9일 오전 2시경 중증장애인 보호시설인 충남 부여군 부여읍 신정리 임마누엘 복음수양관(관장 표병구·表炳球·61·목사·사진)에서 보일러 과열로 추정되는 불이 났다.
화재현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표 목사만은 3, 4차례나 불구덩이 속을 들락거리며 장애인 5, 6명을 업어 날랐다. 마지막으로 거동이 불편한 박봉선씨(64) 등 3명이 남았으나 건물이 이미 불길에 완전히 휩싸여 이들을 구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표 목사는 망설이지 않고 불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한참 후 박씨 등과 함께 시커먼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그의 지인(知人)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표 목사는 젊어서 건축과 유통사업 등을 하다 10여년 전 우연히 장애인시설을 방문한 뒤 “내가 가야 할 길은 힘없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결심했다. 이후 한동안 장애인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98년부터 폐교를 빌려 임마누엘 복음수양관을 세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뒤늦게 신학을 공부해 지난해 목사안수를 받았지만 목회 활동은 하지 않았다.
표 목사의 처남인 부여 규암초등학교 강대봉(姜大鳳) 교장은 “종교적, 도덕적 사명감이 대단해 교회 등으로부터 위탁받은 중증장애인들을 대소변을 받아가며 보살피는 고달픈 생활을 달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표 목사에 의해 구출된 김옥경씨(42)는 “평소 새벽마다 방을 돌아보며 이불을 덮어주는 세심한 분이었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신정리 이장 이규성(李奎晟·61)씨 등 주민들도 처음에는 표 목사에 적대적이었으나 표 목사가 장애인들을 손수 목욕시키고 밥 먹이는 장면을 보고 감동 받아 수년 전부터는 김장까지 담가주고 있다.
한편 이날 불로 표 목사와 박봉선, 이관용(55), 변영우씨(60) 등 4명이 숨졌으나 나머지 16명은 무사히 대피했다. 이 시설은 폐교된 송간초등학교 신왕분교 터에 수용실 식당 등을 갖춘 659㎡ 규모의 무료 정신지체 및 지체장애인 복지시설로 비인가여서 행정당국으로부터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해왔다.
경찰은 나무를 연료로 쓰는 보일러가 과열되면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여〓지명훈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