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임마누엘수양관 표병구목사 '살신성인'

  • 입력 2002년 5월 9일 18시 46분


사비(私費)를 들여 장애인을 헌신적으로 보살펴온 60대 목사가 불길 속에 몸을 던져 장애인들을 구하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아름다운 생을 마감했다.

9일 오전 2시경 중증장애인 보호시설인 충남 부여군 부여읍 신정리 임마누엘 복음수양관(관장 표병구·表炳球·61·목사·사진)에서 보일러 과열로 추정되는 불이 났다.

화재현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표 목사만은 3, 4차례나 불구덩이 속을 들락거리며 장애인 5, 6명을 업어 날랐다. 마지막으로 거동이 불편한 박봉선씨(64) 등 3명이 남았으나 건물이 이미 불길에 완전히 휩싸여 이들을 구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표 목사는 망설이지 않고 불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한참 후 박씨 등과 함께 시커먼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그의 지인(知人)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표 목사는 젊어서 건축과 유통사업 등을 하다 10여년 전 우연히 장애인시설을 방문한 뒤 “내가 가야 할 길은 힘없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결심했다. 이후 한동안 장애인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98년부터 폐교를 빌려 임마누엘 복음수양관을 세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뒤늦게 신학을 공부해 지난해 목사안수를 받았지만 목회 활동은 하지 않았다.

표 목사의 처남인 부여 규암초등학교 강대봉(姜大鳳) 교장은 “종교적, 도덕적 사명감이 대단해 교회 등으로부터 위탁받은 중증장애인들을 대소변을 받아가며 보살피는 고달픈 생활을 달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표 목사에 의해 구출된 김옥경씨(42)는 “평소 새벽마다 방을 돌아보며 이불을 덮어주는 세심한 분이었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신정리 이장 이규성(李奎晟·61)씨 등 주민들도 처음에는 표 목사에 적대적이었으나 표 목사가 장애인들을 손수 목욕시키고 밥 먹이는 장면을 보고 감동 받아 수년 전부터는 김장까지 담가주고 있다.

한편 이날 불로 표 목사와 박봉선, 이관용(55), 변영우씨(60) 등 4명이 숨졌으나 나머지 16명은 무사히 대피했다. 이 시설은 폐교된 송간초등학교 신왕분교 터에 수용실 식당 등을 갖춘 659㎡ 규모의 무료 정신지체 및 지체장애인 복지시설로 비인가여서 행정당국으로부터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해왔다.

경찰은 나무를 연료로 쓰는 보일러가 과열되면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여〓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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