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식씨 87년 '北피랍' 회견은 자작극"

  • 입력 2001년 11월 13일 18시 33분


87년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발표한 ‘북한 공작원에 의한 홍콩교민 윤태식(尹泰植·당시 29세·사진)씨 납북 미수 사건’은 부인을 살해한 남편 윤씨의 자작극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검찰이 13일 발표했다.

사건 발생 13년 만인 지난해부터 이 사건을 재수사해 온 서울지검 외사부(박영렬·朴永烈 부장검사)는 이날 벤처기업 P사 회장인 윤씨(43)를 부인 김옥분(金玉分·당시 34세·일명 수지 김)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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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당시 윤씨가 부부싸움을 하다 김씨를 살해한 뒤 범행을 감추기 위해 시체를 유기하고 싱가포르 주재 북한대사관을 거쳐 월북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씨는 “김씨의 목을 조르고 때린 것은 사실이지만 고의로 숨지게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검찰도 살인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검찰은 당시 김씨가 북한 공작원으로 윤씨를 납북하려 했다는 안기부의 발표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안기부가 사실을 알고도 조작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국정원에 수사자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윤씨가 87년 1월 3일 홍콩의 김씨 아파트에서 헤어지는 문제로 다투다가 김씨를 둔기로 때려 실신시킨 뒤 끈으로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윤씨가 시체를 침대 밑에 숨긴 뒤 싱가포르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자진 월북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같은 달 9일 김포공항에 도착, 기자회견을 통해 납북될 뻔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윤씨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김씨가 홍콩에서 조총련계로 보이는 일본인 2명에 의해 납치된 뒤 나도 북한대사관에 납치됐다가 겨우 빠져 나왔다”고 주장했다.

안기부는 87년 1월 7일 김씨가 북한 공작원으로 윤씨를 납치하려 했다고 발표했으며 이틀 뒤 윤씨를 귀국시킨 뒤 3개월가량 조사했으나 그 후 이 사건에 대해 추가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해 3월 김씨 가족이 윤씨를 고소해옴에 따라 홍콩 경찰에서 수사 자료를 넘겨받아 조사를 벌여 지난달 26일 윤씨를 구속했다.

한편 윤씨의 변호인인 김진세(金鎭世) 변호사 등은 “관련 기록을 넘겨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윤씨의 혐의에 대해 아직 모르겠으나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정황증거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모든 진실은 법정에서 가리겠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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