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꽃동네 봉사자들… 아름다운 휴가 향기로운 땀

  • 입력 2001년 8월 13일 18시 38분


“할아버지! 장군이잖아요.” “어! 그렇구나. 옳지, 여기로 옮기면 되겠구나.”

11일 오후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 있는 ‘음성 꽃동네’ 노인요양원 2층. 3일째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엄지환군(18·충남 공주고 2년)은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 틈에서 열심히 훈수를 하고 있었다.

엄군의 친구 박종성군(18·공주 영명고 2년)은 인근 침대 머리맡에 앉아 다른 할아버지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신이 나서 그동안 좀처럼 털어놓지 않았던 ‘세월의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놓았다.

엄군과 박군의 꽃동네 봉사활동은 지난 겨울방학에 이어 두 번째.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꽃동네를 견학했던 엄군이 “의미 있는 방학을 보내자”며 박군을 이끌고 이곳을 찾은 것이 계기가 됐다.

“봉사활동 점수는 이미 다른 곳에서 채웠어요. 그저 봉사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즐거워 찾은 것뿐이에요. 공부 걱정도 되지만 저희들의 조그만 도움에 화색이 도는 할아버지 할머니나 아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은 금세 사라져요.”

서울에서 온 박정숙씨(38·여)는 1년에 한번뿐인 휴가를 온전히 꽃동네 봉사활동에 바치고 있다. 정신지체 아동시설에서 밥을 지어 먹이고 목욕을 시켜주며 함께 놀아주는 일이 하루의 일과다.

박씨는 “바닷가나 유원지에서 사나흘 보내려고도 생각했지만 보다 보람 있고 기억에 남는 일을 찾다가 꽃동네로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꽃동네를 찾는 사람이 요즘 하루 평균 100명을 넘는다. 봉사활동 점수를 따러 오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저 남을 돕는 것이 좋아 찾아온 이들이 대부분.

꽃동네 사무실의 박마테오 수사(42)는 “하루 수백통씩 쇄도하는 봉사활동 문의를 받다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가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전했다.

음성 꽃동네는 76년 꽃동네 인근의 무극천주교회에 부임했던 오웅진(吳雄鎭·56) 신부가 우연히 만난 최귀동 할아버지(90년 1월 71세로 작고)의 선행에 감동을 받아 세운 곳. 최 할아버지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며 구걸을 해 병약자를 돌보던 인물.

처음에는 방 5개, 부엌 5개의 시설에 무극천 다리 밑 걸인 18명이 생활했으나 그 후 오 신부 등의 노력으로 지금은 40만평 부지에 세워진 13개동에 2500여명의 정신지체장애인, 부랑자, 알코올 중독자들이 모여 한가족처럼 지낸다. 300여명의 수도자들과 상근 봉사자들이 이들을 돕는다.

특히 99년에는 충북 청원에 사회복지사업 전문가를 양성하는 현도사회복지대학을 세우기도 했다.

사회봉사자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이 대학에는 9년째 암으로 투병중인 중견 연극인 이주실씨(57), 국어학계의 거두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심재기(63), 숙명여대 이인복 교수(64) 부부, 충북도 교육감을 지낸 유성종씨(68) 등 저명인사들이 입학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원봉사 및 후원 문의 서울사무소 02-2272-0101, 음성꽃동네 043-879-0100

<음성〓장기우기자>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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