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성관계후 돈줬다면 청소년 성매매 아니다"

  • 입력 2001년 7월 9일 18시 36분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 뒤 돈을 줬더라도 사전에 성관계와 금전 지급에 대한 얘기없이 만났다면 ‘청소년 성매매’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에 대해 여성단체들은 “청소년 보호라는 법 취지를 무시한 판결”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지법 형사4단독 윤남근(尹南根) 판사는 6일 가출소녀 A양(15)과 성관계를 맺은 뒤 매회 4000∼1만4000원을 준 혐의(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홍모씨(26) 등 5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양이 속칭 ‘원조교제’를 제의하는 남성들을 상대하지 않으면서도 홍씨 등은 자발적으로 만난 점, 만나기 전 성관계에 대한 의견교환이 없었던 점 등으로 미뤄 이는 청소년 성매매라기보다는 이성간의 자유로운 만남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남성들이 차비와 식비, 잠자리 등을 제공한 것은 A양과 함께 즐기며 지내는 시간 동안 발생한 부대비용일 뿐 성교의 대가는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가출 청소년과의 성관계에 대해 윤리적 비난은 가능하지만 이를 ‘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로 형사처벌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재산상 이익과 성행위와의 대가관계를 폭넓게 인정할 경우 사생활 또는 애정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며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해 금전적 편의를 제공한 것을 청소년 성매매로 단정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YMCA 청소년성교육상담실 이명화(李明花) 실장은 “오갈데 없는 15세 가출 청소년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며 성관계를 요구한 것은 성매매보다 더 악랄한 성착취로 봐야 한다”며 “판단능력이 부족한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판결에 대해 여성단체들이 연합해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홍씨 등은 지난해 9월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A양이 “부모의 부부싸움을 피해 집을 나온 뒤 잠잘 곳이 없다”며 전화를 하자 A양을 집에 데리고 가 성관계를 맺은 뒤 차비와 용돈 등을 준 혐의로 올해 초 기소됐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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