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물' 들녘으로…청사모 회원 생업접고 해갈 나서

  • 입력 2001년 6월 11일 19시 09분


“그래도 도시에는 물이 넘치잖아요. 열의만 있다면 이 물로 타 들어가는 들녘을 흠뻑 적실 수 있죠.”

충북 ‘청주와 청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청사모’. 이 단체 사무국장인 이욱(李煜·46)씨는 가구점을 운영하느라 평소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눈코 뜰 새 없다. 요즘 그는 매일같이 자신의 가구점이 아니라 청주와 청원의 들녘으로 출근한다. 가뭄으로 아직도 모를 심지 못한 논과 타 들어가는 밭이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

음식점을 경영하는 이 모임의 유호정(柳浩正·42)씨 등 다른 10여명의 회원들도 2일부터 생업을 잠시 접어두고 ‘농촌 물나르기’에 나섰다.

이들이 가는 곳엔 물을 가득 실은 소방차 급수차 군용트럭 급유차 등 10여대의 차량이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하루 5, 6차례씩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모두 5000∼6000t의 물을 농경지에 대고 있다.

사랑과 정성이 모이면 기적을 일궈낸다고 했던가. 회원도 몇 명 되지 않는 이 이름 없는 단체는 이렇게 해서 11일까지 열흘 동안 무려 30여㏊에 이르는 농경지의 갈증을 말끔히 해소해주는 개가를 올렸다.

청사모가 이렇듯 많은 차량을 확보하기까지는 회원들의 애타는 호소가 한몫했다.

청사모 소식을 듣고 자진해서 동참 의사를 밝혀온 이도 적지 않았다. 충북석유 김윤배(金潤培) 대표는 이들의 활동에 감동받아 급유차 두 대를 보내왔다. 갓 뽑은 28t 급유차 한 대는 임시번호조차 떼지 않은 채였다. 사용 중인 다른 22t 급유차 한 대는 기름기를 빼기 위해 이틀 동안 청소를 한 뒤 청사모에 맡겨왔다. 논밭길 운행을 위해 베테랑 운전사 두 명도 딸려 보냈다.

차량을 확보하고 나자 이번에는 차에 물을 담는 게 문제였다. 하천의 물을 싣자니 별도의 장비를 갖춰야 했고 자칫 차량이 수렁에 빠질 우려도 있었다. 이곳저곳을 수소문한 끝에 교원대와 충청대에서 교내 지하수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청원의 카스맥주도 지하수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이 국장은 앞으로는 급수차를 대기 어려운 천수답까지 샅샅이 누빌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로가 좁아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농경지도 많습니다. 한 농민이 모내기를 포기하고 콩이라도 심어야겠다고 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청주〓지명훈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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