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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16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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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창현씨(35). 사지를 모두 쓸 수 없어 혼자선 거동조차 불편한 그가 마침내 광활한 미 대륙을 횡단했다. 무려 5000㎞를 휠체어로 이동한 것이다.
15일 오전11시(현지 시간). 태극기를 매단 전동 휠체어를 힘들게 입으로 조작하며 워싱턴 백악관 앞에 도착한 그의 얼굴은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환히 빛났다. 장애인 복지 향상을 요구하며 휠체어 시위를 벌이던 수백명의 미국 장애인들은 최씨의 위업을 자신들의 것인 양 기뻐했다. 백악관 주변에 몰려있던관광객들도최씨를뜨거운박수로격려했다.
최씨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백악관측에 전달했다. “미국에선 장애인을 ‘할 수 없는 사람’이란 뜻인 ‘disabled man’으로 표현합니다. 저는 장애인도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미 대륙 횡단에 도전했습니다. 제가 성공했으니까 앞으로는 장애인을 ‘할 수 있는 사람(abled man)’이라고 불러줄 것을 건의합니다.” 최씨가 “장애인도 할 수 있다”고 선언하기위해겪은 고초와 역경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해 9월12일 로스앤젤레스에 도착, 대장정에 나섰지만 열흘도 안돼 교통사고로 허리와 골반을 크게 다쳤다. 진통제를 먹어 가며 횡단을 강행했으나 10월1일 도저히 전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눈물을 삼키며 길을 멈춘 최씨는 겨우내 교포 한의사의 도움으로 금침을 1000대나 맞아 가며 치료를 받았다.
3월4일. 아직도 눈발이 매서웠지만 그는 횡단을 중단했던 뉴멕시코주에서 다시 휠체어를 탔다. 그리고 한국과 전세계 모든 장애인을 생각하며 해가 돋는 동쪽을 향해 바퀴를 굴렸다.
미국 음식을 먹지 못하는 ‘토종’ 체질인데다 돈도 없어 끼니는 자원봉사자로 동행한 이경자(李景子·25)씨가 해준 밥과 국 김치로 때웠다. 잠은 교회와 경찰서 등에서 잤다. 어떤 때는 각종 장비를 싣고 뒤따르는 차에서 고단한 몸을 달래기도 했다.
지나는 도시에서 만난 미국의 집없는 부랑민(홈리스)들 가운데는 최씨의 이야기에 감동, 눈물을 흘리며 용기를 내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는 세계 최초로 미 대륙을 횡단했습니다. 한국인의 기상을 떨치고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게 돼 너무 기쁩니다.”
최씨는 고장난 휠체어를 수리한 뒤 이번 주말경 뉴욕까지 휠체어 여행을 계속할 예정이다. 그리고 콜로라도주로 가서 미국 장애인들과 함께 로키산맥의 한 봉우리를 등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