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집안갈등'빚나…'각하 영장'사흘만에 재발부

  • 입력 2001년 4월 24일 18시 39분


재청구된 구속영장 ‘각하’를 둘러싼 ‘법(法)―검(檢) 갈등’이 이번에는 ‘법(法)―법(法) 갈등’이라는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검찰의 영장 재청구 자체가 ‘위법’이라고 보아 ‘각하’결정을 내린 앞서의 판단과는 달리 23일 같은 법원의 다른 판사가 세 번째 청구된 구속영장을 결국 발부했기 때문이다. 서울지법 남부지원의 다른 두 부장판사가 같은 사안에 대해 정반대의 판단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 판사들 사이에서는 “뭔가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주장도 있어 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박시환(2차 청구영장 각하)홍기종(3차 청구영장 발부)
영장 재청구 요건새 증거나 사정 변경 새 증거 등 없어도 재청구가능
영장각하 가능여부위법한 영장은 ‘각하’해야‘기각’으로 족하다
피의자 처리문제영장청구 위법하므로 석방증거인멸 등 우려 있어 구속

▽쟁점과 두 판사의 판단〓문제의 발단은 형사소송법에 영장 재청구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데서 비롯됐다.

영장을 각하한 박시환(朴時煥) 부장판사는 ‘인권’을 위해 형사소송법상의 재체포 금지(200조4 제3항)와 재구속 금지조항(208조)을 폭넓게 해석해 적용했다.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던 피의자에게도 재체포 금지조항을 적용해야 하고, 재구속 금지조항의 취지에 따라 영장의 재청구를 위해서는 ‘새로운 증거나 사정의 변경’이 있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영장을 발부한 홍기종(洪基宗) 부장판사는 “문제된 사건의 경우 재체포나 재구속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영장 재청구 자체를 위법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영장 각하에 대해서도 박부장판사는 영장청구 자체가 위법하면 가능하다고 본 반면 홍부장판사는 영장청구가 위법인 경우라도 기각하면 족하다는 입장.

▽법조계 반응〓대부분의 판사들은 민감한 ‘집안문제’이기 때문인지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서울지법의 A부장판사는 “영장심사도 일종의 재판인데 똑같은 사안에 대해 같은 법원이 사흘 만에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면 국민이 혼란스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의 B판사는 “개개 법관이 독립된 국가기관인 이상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오히려 법원이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재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법원 내부 갈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서울지법의 C판사는 “박 부장판사는 검찰의 안이한 재청구 관행을 지적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이론을 세워보려 한 것이고 홍 부장판사는 법이 명확하게 금지하지 않은 이상 문제삼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에 대해 김종훈(金宗勳) 변호사는 “법리의 차이를 떠나 박 부장판사가 영장재청구와 처리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의미가 있다”며 “이번 논란이 영장 재청구에 관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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