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왕따교수' 해외학계서 '우뚝'

  • 입력 2001년 4월 16일 18시 28분


건국대 의대 충주병원 내과 최수봉(崔秀峰·50)교수는 최근 당뇨병 중 상당 부분이 뇌의 이상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동물실험을 통해 세계 처음으로 규명했다. 그러나 국내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에 반해 미국의 이 분야 권위지인 ‘메타볼리즘’ 편집진은 최근 이 연구결과를 주요 논문으로 소개하기로 결정했다. 최교수는 “쥐에게 당뇨병에 걸리도록 한 뒤 항우울제를 먹여 뇌 기능을 향상시켰더니 인슐린이 제대로 작용했다”면서 “국내 학술지에선 논문을 낼 때마다 ‘미끄럼을 타서’ 미국 학술지에 곧바로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됐다”고 16일 밝혔다.

지금까지 학계에선 인체에서 혈당이 남으면 인슐린의 작용으로 근육 속에서 글리코겐으로 저장됐다 에너지로 쓰이는데 이 시스템이 고장난 것이 당뇨병이라고 설명해 왔다. 최교수는 이런 현상 뒤에는 뇌의 시스템 고장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는 최근 2년여간 자신이 속한 학회에 80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인슐린 펌프’의 치료성과 논문을 5번 냈지만 한번도 게재되지 않았다. 같은 연구결과를 다른 학회지에 신청했더니 곧바로 실렸다. 인슐린 펌프는 체내 혈당량을 자동 조절한다.

이번 연구결과도 지난해 가을 일본 구마모토에서 열린 ‘한일당뇨병학회’에서 중간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일본인 의사들만 큰 관심을 보였다.

최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의료계의 왕따’. 그는 80년 서울대 의대 대학원 시절 인슐린펌프를 개발했다. 최교수는 “‘학계 관례대로 의공과 교수가 개발했다’고 인정하라는 스승의 요구를 거부한 뒤 고난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동료들은 “스승과 싸워서 잘될 수가 없다”고 했지만 최교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81년 당뇨병학회에서 인슐린펌프 치료 성과를 발표하고 박수를 기대했다. 그러나 한 원로교수가 일어나 “그런 치료를 왜 하느냐”고 말했다.

91년 미국 생리학회지(AJP)에 이번 연구결과의 전 단계로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작용이 떨어지는 것은 근육이 혈당을 보관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중추신경의 이상 때문’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실었다. 국내에선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 무렵 학회에서 스승에게 “왜 환자 중심이 아니고 교과서에 얽매여 치료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그 뒤 그는 서울대 의대 내분비내과 동문회에서 제명당했다.

최교수의 스승은 16일 이에 대해 “한때 제자였지만 의견이 달라 그에 대해 어떤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면서 언급을 피했다.

99년 11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최교수는 ‘인슐린펌프 치료 세미나’를 열었다. 한 의사가 이 자리에서 악수를 청하며 “내가 여기 왔었다는 사실을 다른 의사들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S대병원의 김모교수는 “학회에서는 학술위원들이 논문을 검토해 게재 여부를 결정한다” 면서 “최교수의 논문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Y대병원의 한 교수는 “최교수가 기존 의료문화를 인정하고 타협했다면, 또는 우리 의료문화가 좀더 포용적이라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최교수는 “의사가 치료만 생각해야지 왜 정치인이 돼야 하느냐”고 말한다.

“20년 전 제가 주장한 인슐린펌프 치료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권위자들’은 아직 제 치료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더러 인정해도 값싼 국산 치료제가 있는데 굳이 값이 4, 5배 비싼 미국제를 씁니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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