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의 살신성인' 화재진압 소방관 장석찬씨등 사망

  • 입력 2001년 3월 4일 18시 32분


이 얼굴을 다시는 못보다니…
이 얼굴을 다시는 못보다니…
“나와, 빨리 나와! 무너진다!”

급박한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 직후, 9명의 소방관들이 미처 몸을 피할 틈도 없이 굉음과 함께 주택이 무너져내렸다. 이 사고는 한명이라도 더 구하려는 일념으로 위험한 화재현장 수색을 마다하지 않던 소방관 6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4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2층 주택 화재로 숨진 소방관 박준우씨(31)의 약혼녀 장모씨(31)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빈소에서 사고 하루 전날 밤 박씨가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다시 켜보며 눈물을 흘렸다.

‘걱정 같은 것 하지 말고 잘 자. 꿈에서 밤새 지켜줄게.’

그러나 일주일 뒤인 10일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던 두 젊은이의 사랑은 결국 화마(火魔)와 무너진 건물 속에 함께 묻히고 말았다. “소방관은 너무 위험한 직업”이라며 결혼을 반대하던 장씨 가족들을 두 사람이 끈질기게 설득해 맺어진 인연이어서 주위의 안타까움이 더했다.

◀순직 소방사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故김기석(42)-박준우(31)-장석찬(34)-박동규(46)-박상옥(32)-김철홍(35)소방장

소방교 김철홍씨(36)는 5남2녀 중 막내. 내근 행정직으로 일하던 김씨는 심한 천식으로 병원치료를 받던 홀어머니(75)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2월 현장근무를 자원한 경우. 매월 30여만원의 수당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노모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에는 그 치료비까지 떠맡았다.

소방교 박상옥씨(32)는 딸(3)과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남편으로 소문나 있었다. 부인 김신옥씨(28)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2, 3차례 집에 전화해 딸과 나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이었다”며 오열했다. 2남5녀 중 장남이지만 집이 좁아 어머니를 모시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던 박씨는 올 봄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넓은 집으로 이사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가족은 전했다.

또 산악구조 레펠 전문가인 소방사 장석찬씨(35)는 능력을 인정받아 무려 4500여회나 화재 및 구조 현장에 출동한 ‘현장 베테랑’. 동료들은 “장씨는 특전사 출신답게 현장에서 언제나 가장 용감히 구조활동에 앞장섰으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회고했다.

19년간 소방관 생활을 한 소방장 박동규씨(45)는 동생 정용씨(39·서울 중랑소방서 소속 소방교)도 소방관인 ‘형제 소방관’. 정용씨는 “형이 소신을 갖고 힘든 소방관 생활을 하면서도 보람을 찾는 모습을 보고 나도 형과 같은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다”며 형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소방교 김기석씨(43)는 30대 중반에 소방관의 길에 들어선 늦깎이. 3남2녀 중 맏아들로 30년 전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신 김씨는 학구열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했다. 중졸 학력으로 7년간의 해병대 장기하사관 복무를 마친 김씨는 20대 중반부터 공부를 시작, 야간고교와 원광대 행정학과를 잇따라 졸업하고 94년에는 방송통신대에서 국문학과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95년 37세 때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이 내 갈길인 것 같다”며 119구조대에 자원해 소방관이 됐다.

소방관들의 봉급은 위험도에 비해 너무나 박봉. 소방사의 경우 본봉이 평균 73만∼74만원 정도에 화재진압수당(8만원)과 위험수당(2만원) 등 각종 수당을 합쳐도 120만원을 넘지 못한다. 반면 지난해 한해 동안에만 5명이 순직했고 부상한 소방관도 124명. 95년 이후 숨진 소방관은 모두 38명.

<이완배·최호원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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