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가도 정신은 영원히"…전태일 30주기맞은 평화시장

  • 입력 2000년 11월 12일 19시 03분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다고 했나요. 더 이상 옛 평화시장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네요.”

30년 전인 70년 11월13일. 비인간적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스무세살 꽃다운 청춘을 불살랐던 ‘충격의 현장’에는 지금 차디찬 겨울바람만 스산하게 불고 있다. ‘전태일 기념사업회’ 민종덕 이사(48)는 세월의 변화가 못내 아쉬운 듯 중구 을지로 분신현장에 설치된 조그만 전태일 기념 동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서울 출신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일찌감치 을지로 근처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민씨에게 당시 ‘전태일 사건’은 그 자체가 충격이었다. 이를 계기로 사회현실에 눈을 뜬 그는 74년부터 곧바로 전씨가 공들였던 청계피복노동조합 운동에 뛰어들어 가시밭길 인생을 걸어야 했다. 그 후 20여년 동안 청계천 현장을 지킨 그에게 10여 차례의 수배생활과 2년여의 감옥살이가 ‘훈장’처럼 따라다녔다.

94년 결국 청계천을 떠나 지금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사무실을 내 농산물직거래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전태일과 평화시장’은 그에게 아직도 삶의 방향타가 되고 있다.

60년대말부터 70년대까지 평화시장 건물 2개에 입주해 있던 봉제공장 700여개는 80, 90년대에 모두 경기 외곽으로 옮겨가 버렸다. 대신 전국을 상대로 옷도매상을 하는 점포 2000여개가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평화시장의 3층 건물 외형은 그대로이지만 90년대부터 냉난방시설이 들어서는 등 현대화됐어요. 부근에는 두산타워 등 하늘을 찌르는 패션매장도 들어서 ‘스카이라인’이 완전히 변해버렸지요.”

분신의 현장 거리는 그대로 남았지만 사람들에게 전태일은 잊혀진 듯했다. 평화시장에서 모자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우씨(36)는 “전태일이란 사람이 분신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 장소가 여기인 줄은 몰랐다”며 이 곳 상인들은 그같은 사실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두산타워, 밀리오레, 프레야타운 등 동대문 패션타운을 찾은 젊은이들도 전태일에 대해 “영화배우 홍경인이요?(홍경인이 영화 ‘전태일’의 주연을 맡았음)” “잘 모르겠는데, 누구지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민씨는 “전태일 선배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아직 냉랭한 것 같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념사업회측이 사건 현장 부근의 청계로를 ‘전태일로(路)’로 명명해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했지만 서울시는 “사후 100년이 안돼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는 명분을 내세워 거절했다. 11일 전태일기념문화행사도 서울시내 대학 당국들의 냉담한 반응에 떠밀려 장소를 못 구하다가 가까스로 동국대에서 마칠 수 있었다.

“비좁은 다락방 봉제공장들이 없어졌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는 없죠. 인간다운 삶을 얘기했던 전태일 선배의 정신은 앞으로도 길이 남을 겁니다.”

<정연욱·황일도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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