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용태울 마을' 주민들 러브호텔 한숨

  • 입력 2000년 10월 12일 18시 57분


“버스 노선을 500m만 연장해 달라고 애원했는데 수년째 외면하더니만 이곳에 러브호텔을 허가해 주다니….”

청정지역으로 이름난 대전 서구 장안동 ‘용태울 마을’에서 30년째 살고 있는 장정순(張貞順·67·여)씨는 “최근 이웃에 사는 김씨가 땅을 팔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곳에 ‘이상한 시설’(러브호텔)이 들어선다니 기가 막힌다”며 혀를 내둘렀다.

대전 서구청은 최근 장안동 247, 287 일대 계곡 인근에 ‘러브호텔’을 잇따라 허가해 줬다. 이곳은 연간 30만명의 청소년이 찾아오는 장태산휴양림과 인접해 있는데다 1급수를 유지하고 있는 용태울저수지와는 불과 1㎞쯤 떨어진 상류지역.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데다 계곡에는 지금도 가재가 살고 있어 주민들은 계곡물을 그냥 떠 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곧 ‘퇴폐 문화의 마을’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맑은 물을 지키려고 주민들은 계곡쪽에 쓰레기 하나 버리지도 않았어요.”

주민들은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이유로 무책임하게 러브호텔을 잇따라 허가해 준 구청을 질타했다.

“집이 낡아 고치려 해도 이리저리 트집 잡던 구청이 러브호텔을 쉽게 허가해 준 것은 도대체 누굴 위한 일입니까.”

공직에서 퇴직한 뒤 여생을 보내기 위해 이 마을에 들어왔다는 임모씨(63)는 집을 고치면서 산쪽으로 90㎝쯤 건물이 파고 들어갔다고 해서 혼쭐난 일도 있다고 소개했다. 선거때만 되면 누구누구를 찍어 주면 버스 종점을 옮겨준다고 해서 버스를 돌릴 수 있도록 주민들이 밭까지 내놓았다고 했다.

김모씨(40)는 “왜 하필이면 이곳에 러브호텔이냐”며 “아이들이 매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면서 러브호텔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계곡과 산으로 둘러싸인 러브호텔 예정지는 아직은 밭 그대로다. 그러나 조만간 포클레인과 레미콘 차량의 굉음이 계곡을 울린 뒤 지하 1층 지상4∼5층짜리 ‘성(城)’같은 러브호텔이 들어설 태세다.

대전 서구청 한 간부의 말은 더욱 한심하다.

“적법한 걸 어떻게 합니까. 용태울저수지가 앞으로 식수원으로 사용된다고요? 우린 현재만 보고 일을 하는 것이지 꼭 미래까지 내다봐야 합니까.”

<대전〓이기진기자>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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