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모습 잃는 신도시]"녹지 야금야금 초고층만 쑥쑥"

  • 입력 2000년 9월 26일 19시 09분


“계획된 도시라더니 이렇게 마구잡이로 개발해도 되는 겁니까?”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정자동 상록마을 L아파트에 살고 있는 윤영례씨(59·여)는 요즘 불안하다. 집 앞 공터에 25∼38층짜리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됐기 때문.

아파트 단지와는 불과 20여m거리. 밤이면 성남대로의 가로등이 도열해 있는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이제 콘크리트 벽만 쳐다보고 살게 됐다. 공사가 시작되면 2, 3년간은 먼지와 소음공해로 시달릴 걱정도 태산같다. 윤씨는 “초고층에다 51∼92평형의 호화아파트가 들어서면 주민들간 위화감마저 우려된다”며 “이미 집값도 3000만원 정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전원 신도시라더니 갈수록 엉망이 돼간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분당-일산 계획인구 초과▼

성남시 분당과 고양시 일산 등 신도시의 쾌적한 주거환경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용도변경으로 초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 처럼 들어서고 인구 과밀화로 인한 도시기반시설 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스카이라인이 무너지고 도시미관이 흉물스럽게 변하고 있으며 도로에는 체증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분당의 계획인구는 39만320명. 토지공사가 인구에 맞게 도로 공원 상하수도 병원 등 도시기반시설을 설계했다. 그러나 8월말 현재 39만2238명으로 이미 2000명 가까이 초과했다. 여기에 상업업무용지에서 주상복합용지로 용도 변경된 백궁정자지구 8만6000평에 주상복합아파트 신축이 가능해져 2003년까지 6000여가구 2만여명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또 이미 완공이 끝나 입주한 오피스텔 5곳 2000여 가구 외에 13곳 5000여가구(2만여명 수용) 규모의 오피스텔이 분당 내 상업업무용지에서 신축 중이거나 지어질 예정이어서 2003년경 분당 인구는 45만명선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녹지의 훼손도 가중되고 있다. 유일한 수도권 남단녹지인 판교 삼평지구 250만평이 개발 예정인데다 이미 분당신도시 내 녹지 곳곳에서는 개별적인 주택허가가 급증, 500여건이 넘어섰다. 이매촌 일대 1만7000평에는 여성회관과 중앙도서관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고, 인근 녹지 3만9000평에서도 문화예술회관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율동공원 주변 5만여평도 민자유치 방식으로 눈썰매장 등 위락시설 개발이 성남시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당초 계획을 잘못 세워 뒤늦게 벌이는 이매역사 공사와 국군수도병원 앞 도로확장공사 등으로 분당을 관통하는 성남대로의 교통체증은 물론 율동공원 진입로의 경관훼손도 이뤄지고 있다.

분당 입주자대표회의 고성하 회장(55)은 “분당이라고 하면 시원스레 뚫린 도로와 풍부한 녹지 등 쾌적한 주거여건이 제일의 자랑거리였는데 인구가 늘면서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분당에 자부심을 느껴온 많은 주민들이 과밀화를 부추긴 성남시에 대한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일부지역 급수도 차질▼

일산도 사정은 마찬가지. 계획 수용인구는 27만6000명이지만 8월말 현재 인구는 이를 넘어선 28만9095명으로 부족한 기반시설로 인한 문제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상수도는 현재 하루 15만t이 공급되고 있으나 인구가 늘면서 고지대인 마두동과 일산4동이 급수에 차질을 빚고 있다. 백석동 3만3000여평에 추진되고 있는 41∼55층 규모의 초고층아파트 10개 동이 들어서면 3500가구 1만1000여명의 인구가 더 늘어나게 된다. 신도시의 숨통이 막히고 있다.

<성남·고양〓남경현·이동영기자>bibul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