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의료대란-금융대란 조짐등 정책조정 "먹통"

  • 입력 2000년 7월 4일 19시 29분


“산 넘어 산이다.”

요즘 민주당 당직자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자조 섞인 푸념이다.

지난달 ‘의료대란’ 때도 적기 해결을 못해 결국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해결사’의 짐을 넘겼던 정부 여당은 최근 ‘금융대란’의 조짐까지 불거지자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여기다 롯데호텔노조와 의료보험노조의 파업을 강경진압했다는 주장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공권력 행사의 형평성 논란, 언제든 발화 가능한 공무원연금법 개정문제 등 난제가 산적해 있어 여권은 어디부터 손대야할지 모르는 난조(亂調)에 빠져드는 양상이다.

문제는 의료대란 이후 줄을 잇고 있는 난제들이 하루아침에 곪아터져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료대란만 해도 이미 지난해부터 예고된 상황이었음에도 정부 여당은 “시민단체와 의약계가 지난해 3월 합의한 내용”이라며 안이하게 대응하다가 파국을 자초했다.

특히 여권은 의료계가 전면파업에 돌입하자 그제서야 허겁지겁 ‘의보수가 인상’ ‘약사법 개정’ 등 달래기에 매달려 이른바 사회적 갈등 조정기능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1일로 예정된 금융노련 총파업사태도 결국 금융구조조정(은행합병)을 둘러싸고 정부당국이 “한다” “안한다”를 되풀이하면서 수차례 오락가락함으로써 노조측의 신뢰를 상실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헌재(李憲宰)재경부장관과 이용근(李容根)금융감독위원장은 “2차 구조조정을 한다”(1월)→“강제합병은 없다”(총선 직전)→“금융지주회사를 통해 공적자금 투입 은행을 합병하겠다”(5월말) 등 어지러울 정도로 오락가락해 온 게 사실이다.

금융계에서는 심지어 “시중 은행장들조차 정부 핵심 금융당국자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책을 일괄 공정으로 보고 관리할 수 있는 종합조정기능이 갖춰지지 않은데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대형 이슈에 여권 전체가 매몰돼 민생을 챙기는 데 소홀했던 점도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대 송호근(宋虎根)교수는 이와 관련해 “정책 윤곽만 제시한 채 나머지 모든 결정과 사후처리를 관료에게 떠넘기는 것이 여권의 개혁정치의 현 주소”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박원순(朴元淳)사무총장도 “걸핏하면 공권력에 의존하려는 행태는 가장 낮은 단계의 정치력”이라고 최근 정부의 노조파업 강경 진압 움직임을 비판한 뒤 “지금이라도 사회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윤영찬·전승훈·김승련기자>yys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