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 경위〓최현실씨는 재미교포 어머니의 지원으로 탈북을 준비하던 96년7월, 막내 성철씨 생일 때 자녀들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은 채 “9월에 꼭 친정으로 오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명희씨는 군부대의 외화벌이 승용차 운전사로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 때문에 친정에 올 수 없었다.
▽북한생활〓명희씨 남편은 지난해 1월 승용차를 팔고 중국으로 달아났다가 붙잡혔다.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도망가려다 다시 붙잡혀 10년형을 선고받고 회령교화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지난해 4월 숨졌다. 명희씨는 청진검찰소에서 남편과 함께 조사를 받던 중 가족의 도움을 받기 위해 큰아들을 친정으로 보냈으나 모두 탈북한 뒤였다.
▽탈북〓지난해 7월 식량난을 견디지 못해 청진시 친지집에 두 자녀를 맡기고 장남 철과 함께 감자를 얻기위해 양강도 대홍단군으로 향했다. 명희씨는 그러나 도중에 “감자철이 아니다”는 말을 듣고 장남을 청진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부모소식이라도 듣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 숨어있던 중 공안(경찰)에 붙잡히기도 했으나 “부모가 미국에 있으니 풀어주면 돈을 많이 주겠다”고 말해 풀려나기도 했다. 명희씨가 서울에 오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달러를 보내주던 외할아버지가 서울의 ‘벧엘 의원’ 간판 옆에서 찍었던 옛 사진을 기억한 데 따른 것. 조선족의 도움으로 서울의 의사협회 등을 통해 힘들게 작은 외할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마침내 서울의 어머니와 통화하게 됐다.
▽대륙횡단〓명희씨는 조선족 밀무역꾼의 도움으로 북에 남아있던 자녀 3명을 중국으로 데려왔다. 이어 서울 가족의 도움으로 중국대륙을 건너 올 1월 제3국에 입국했다. 이곳에서 5개월간 어렵게 생활하다가 다시 6월초 인접국 공관의 도움으로 탈북 10개월만에 한국에 오게 됐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