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인호 도주'전모]변호사 낀 '범죄 백화점'

  • 입력 2000년 6월 4일 19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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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0억원대 금융사기 행각을 벌여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 병원에 입원중 해외로 달아난 변인호(卞仁鎬·43)씨의 도주에 변호사 의사 경찰관 교도관 여행사대표 등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승구·李承玖)는 4일 변씨의 도피와 사기행각 등을 도운 혐의로 하영주(河寧柱·39)변호사와 전 서울구치소 의무관 이현(李賢·58)씨, 서울 관악경찰서 김우동(金雨東·36)경사, 서울구치소 박병두(朴炳斗·41)교위, 동방여행사 대표 김춘자(金春子·50·여)씨,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회장 오호석(吳昊錫·56)씨, 변씨의 누나 변옥현(卞玉賢·52)씨 등 12명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의정부교도소 재소자 한주석(韓周錫·52)씨 등 6명을 불구속기소하고 주서교타운 대표 정홍길(鄭洪吉·58)씨 등 6명을 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하변호사는 변씨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98년 9∼11월 변씨로부터 2억원을 받은 뒤 의무관 이씨에게 “변씨가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을 수 있도록 소견서를 작성해 달라”며 3000만원을 주고 교도관 박교위에게는 변씨의 외래진료를 청탁하며 1000만원을 준 혐의다.

하변호사는 변씨 사건을 수임하도록 다리역할을 해준 재소자 한씨에게 2000만원을 준 혐의도 받고 있다.

변씨는 98년 12월 서울고법에서 구속집행정지결정을 받고 한양대 병원에 입원했다가 지난해 1월13일 병실문을 지키던 사설 경호원 송경한(宋慶漢·27·구속기소)씨를 100만원에 매수해 도주한 뒤 위조여권을 이용해 6월 26일 인천을 통해 중국으로 밀항했다.

동방여행사 대표 김씨는 지난해 5월 변씨의 누나로부터 1000만원을 받고 ‘강용호’라는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변씨의 위조여권을 발급해 주었으며 관악경찰서 김경사는 지난해 9월 변씨 추적에 대한 검찰의 수사정보를 빼내 변씨의 장모에게 전달해 주고 1000만원을 받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한편 검찰은 변씨가 중국으로 도망친 뒤에도 2차례 더 금융사기 행각을 벌여 64억2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새롭게 밝혀냈다.

검찰에 따르면 변씨는 중국에 도피중이던 지난해 12월 하수인을 내세워 주레이디가구 경영권을 인수한 뒤 누나와 짜고 H은행에서 60억원을 편법 대출받아 경영권 인수대금조로 일부를 지불한 뒤 이 회사 명의로 발행한 융통어음을 진성어음인 것처럼 속여 K은행 종로지점 등에서 62억원에 할인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회장 오씨는 98년 5∼7월 “1심 담당 재판부에 청탁해 변인호를 석방시켜 주겠다”며 변씨의 장모로부터 1억2000만원을 받았으며 주서교타운 대표 정씨는 “항소심 재판부에 청탁해 감형 등 유리한 재판을 받게 해 주겠다”며 변씨의 누나로부터 9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관계자는 “변씨가 현재 부인 등 가족과 중국에 머물며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변씨의 강제송환을 위해 중국 당국 및 인터폴과 협의중”이라고 말했다.

▼변인호는 누구? 브로커출신 기업형사기 40억금품 항상 소지▼

97년말 8개 은행과 10여개 기업, 증권시장을 농락하는 3900억원대의 거액 사기극으로 세간의 화제가 됐다.

80년대 초 서울 J대를 중퇴하고 중소 전자업체에 근무하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누나를 도와주면서 경매 브로커와 주식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93년부터 서울 용산전자상가에 J&B주 등 5개 유령업체를 차려 반도체 수출을 하면서 한때 거금을 벌어들였다.

96년 반도체 가격이 급락해 손해를 본 뒤 한보어음에 손을 댔다가 97년 1월 한보철강 부도로 260억원의 빚을 지자 본격적인 사기행각에 나섰다.

변씨는 신용장 개설과정이 허술한 점을 악용, 가짜 신용장으로 수천억원을 받아내는가 하면 기업인수합병설을 퍼뜨려 주가조작에 개입했다. 미국과 홍콩에서 활동하는 두 동생에게도 7개의 유령회사(페이퍼 컴퍼니)를 차리게 하는 등 ‘3형제 사기극’을 연출했다.

변씨는 주변사람들에게 “할아버지가 외무장관을 지냈고 어머니는 국내 7대 큰손의 한 사람으로 삼성, 현대도 좌지우지한다”고 속이고 최고급 승용차에 경호원을 대동한 채 특급호텔에만 묵은 것으로 알려졌다. 20억∼40억원의 채권과 수표 등을 항상 갖고 다니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18억원을 떼주는 등 큰손을 과시하면서 재력가로 행세해왔다.

<이명건·이정은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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