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국정원맨' 엄익준씨 간암숨기고 남북회담 준비

  • 입력 2000년 4월 26일 23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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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신병으로 물러난 전 국가정보원 엄익준(嚴翼駿·57)제2차장은 직업의식에 투철한 공복(公僕)의 자세를 새삼 일깨워준 ‘영원한 국정원맨’이었다.

엄전차장은 2월 21일 간암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를 숨긴 채 일상업무는 물론 남북정상회담 성사 준비에 몰두했다. 이 때문에 병세가 더욱 악화됐고 밤에는 허리통증을 견디지 못해 울곤 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그는 북한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을 하자”는 연락이 온 직후인 이달 7일 “할 일을 다했다”며 임동원(林東源)국정원장에게 사의를 표명, 35년간 몸담았던 국정원을 떠났다.

그는 사의 표명후 전직원에게 E메일을 띄워 “국가정보기관 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사명감이며 개인보다는 전체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다.그는 총리보좌관 때인 94년 7월2일 판문점에서 열린 정상회담 실무대표 접촉에 참가하느라 큰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성실했다. 현정부출범과 함께 떠났던 국정원에 지난해 6월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안팎의 이런 평가 덕분이었다.국정원의 한 간부는 “오욕으로 얼룩졌던 국정원에 그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안타까워 했다.

<양기대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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