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탤런트 술시중"…中企사장 혼 뺀 億臺 사기골프

  • 입력 2000년 4월 5일 19시 54분


여자 탤런트까지 동원된 수억원대 ‘골프 사기단’이 경찰에 적발됐다.

골프로 사흘만에 3억3000만원을 날린 중소기업체 사장 박모씨(47). 섬유업체를 경영하는 박씨가 손모(44) 이모(50) 지모씨(48) 등의 마수에 처음 걸려든 것은 2월 중순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 모 스포츠센터에서였다.

손씨 등은 게임비를 내는 가벼운 내기골프로 박씨를 유인했다. 서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친선게임에서 평균타수 85타인 박씨는 자신감을 얻었다.

자신감을 얻은 박씨는 경관 좋은 제주도에서 내기 골프를 치자는 손씨 등의 제의에 선뜻 응했다. 손씨 등은 500만원을 주고 모 방송국 주말드라마에 출연중인 탤런트 장모씨(27) 등 20대 여자 3명을 제주도로 불러 술시중을 들게 했다.

이씨와 지씨는 평균타수가 자신과 비슷한 85타 정도였다. 손씨는 한참 하수인 100타에 가까웠다. 손씨와 이씨가 한 편이 되고 지씨와 박씨가 한 편이 되자 박씨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첫날은 순조로웠다. 1500만원을 딴 것이다.

박씨는 다음날 판돈을 올리자는 손씨 등의 제의에 흔쾌히 응했다. 6000만원짜리 1게임과 1억2000만원짜리 2게임에서 모두 참패, 1억5000만원을 날렸다. 상대편과의 타수 차이는 겨우 3,4타. 조금만 노력하면 다시 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음날 꼭 이기겠다고 벼른 박씨는 판돈을 더 올렸다. 그러나 1억2000만원짜리와 2억4000만원짜리 게임에서 모두 잃었다. 3일만에 3억3000만원을 날린 셈이었다.

게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컨디션이 안좋아 아깝게 졌다’고 여겼던 박씨는 억울한 생각에 경찰에 도박혐의로 신고했다.

박씨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손, 이, 지씨 세사람이 한패였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질 때 항상 3,4타 차이로 지게 된 것도 자신이 잘 칠 때는 자신과 한편이던 지씨가 일부러 ‘오비’(공을 규정코스 밖으로 내보내는 것)를 내 타수를 속인 사실도 알게 됐다.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는 5일 손씨 등 3명을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조사결과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손씨 등은 IMF사태로 경영이 악화되자 사기골프를 통해 경영자금을 조달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