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구제역 발생한 홍성군표정]무장군인 주민통제

  • 입력 2000년 4월 2일 21시 07분


“내가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충남 홍성군 구항면 장양리 자신의 목장에서 기르던 한우에서 ‘의사 구제역’ 증세를 발견해 당국에 신고한 이모씨(57)는 2일 연신 한숨을 토하며 괴로워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수의과학검역원 직원들이 자신이 기르던 한우 30마리를 모두 도살해 땅에 파묻는 것을 지켜보며 “며칠 뒤 딸 결혼식도 치러야 하는데…”라고 울먹였다.

이씨 집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서 소를 키우는 최모씨(52)도 이날 검역원 직원들과 함께 20마리의 소를 도살해 땅에 묻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날 줄 몰랐다.

경기 파주에 이어 의사 구제역이 발생한 구항면 일대는 ‘계엄상황’을 방불케 하는 통제가 계속되고 있다. 구항면으로 통하는 주요 도로 12곳에는 임시 초소와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가운데 무장 군인과 경찰관 등이 차량과 주민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또 마을은 온통 뿌연 소독약으로 뒤덮였다.

가축질병 발생지역에서 반경 500m 안에 거주하는 131가구 주민 400여명은 외부 출입이 완전 차단된 채 충남도에서 공급하는 생필품으로 생활하고 있다.

발병지역인 구항면 장양리를 중심으로 반경 20㎞ 안에 있는 홍성 청양 예산군과 보령 서산시 등 5개 시군 18개 읍면의 1만1000여 농가는 의사 구제역 피해가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농가에서 기르는 가축은 충남도 전체의 43.8%인 61만1000마리에 이른다.

이들 지역의 축산 농민들은 이날 삼삼오오 모여 앞으로의 사태 진전을 걱정하며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홍성지역은 충남에서도 축산의 비중이 높은 곳. 한육우의 경우 4190농가에서 도 전체의 14.3%인 3만8000여마리를 기르고 있으며 양돈은 1150농가에서 도 전체의 23.8%인 33만8000여마리를 기르고 있다.

홍성군 은하면에서 돼지를 기르는 이모씨(39)는 “경기 파주에서 의사 구제역이 발생해 돼지 값이 ㎏당 1000원에서 700원으로 뚝 떨어졌는데 이번엔 우리 지역에서 또 질병이 발생해 아예 반출조차 못하게 됐다”며 울먹였다.

홍성축협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홍성지역 경제는 우시장이 이끌다시피 했는데 우시장이 폐쇄됐으니 이제 지역 경제가 얼어붙게 됐다”고 걱정했다.

<홍성〓이기진기자> doyoce11@donga.com

▼황사통해 전명가능성 제기…서해안 축산농가 구제역 비상▼

경기 파주의 수포성 가축질병이 구제역으로 확인되고 충남 홍성에서도 비슷한 질병이 발생함에 따라 황사가 새로운 감염경로로 떠올랐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파주와 홍성의 질병이 거의 비슷한 시기인 지난달 20일경 발생했고 양 지역이 모두 서해안에 면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구제역 바이러스가 황사 바람을 타고 넘어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2일 밝혔다. 두 지역 모두 중국 여행객이나 수입 건초, 야생동물과 같은 다른 전파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황사 감염경로가 확실하다면 다른 지역에서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중국은 국제수역사무국(OIE) 비가입 국가로 가축 전염병 발생자료가 정식 보고되고 있지 않지만 지난해 푸젠(福建)성과 옌볜(延邊) 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구제역 발생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우선 홍성 전염병은 발생시기가 파주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파주에서 전파됐을 가능성은 없다.

방역당국은 또 일본에서 발생한 의사 구제역도 우리보다 앞선 지난달 12일경 발생했다는 점에서 ‘황사 전파설’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

공기전염이 되려면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바람이 불어야 하고 △저온(섭씨 15도 이하)에 적당한 습기(습도 70∼80%)가 있어야 하며 △산 등 장애물이 없어야 하는 3개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지난달 20일경 서해안 지역의 날씨나 지형이 이 조건을 충족한다는 것. 기상청 관계자는 “중국 내륙 깊숙한 지역에서 발원한 황사는 편서풍을 타고 4, 5일 만에 한반도에 도착한다”며 “오염물질이 황사바람을 타고 넘어올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옥경(金玉經)수의과학검역원장은 “국내에 없던 바이러스가 자연 발생했을 가능성은 없다”며 “한중일 세 지역의 전염병 바이러스 모양이 비슷한 점으로 미루어 구제역 발생국가로부터 공기 전파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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