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北 사이트 접속 무방비…구멍뚫린 사이버安保

  • 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민족의 태양이시며 해방의 주체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께서는 1953년 전체 인민을 전후 복구건설을 위한 장엄한 투쟁으로 불러일으키시어….”

마치 북한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 대한 찬양과 북한의 주장이 외국에서 만들어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국내 네티즌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다.

특히 일부 운동권 학생들의 경우 인터넷을 통해 북한의 정보를 쉽게 얻는 등 ‘사이버 안보’에 큰 허점이 드러나고 있으나 관계당국은 전문인력 부족과 기술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거의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범태평양 조선민족경제개발촉진협회’ 명의로 99년 10월 중국에서 만들어진 ‘조선인포뱅크’(www.dprkorea.com)에는 북한의 최근 소식, 김정일의 행적 및 김일성 부자를 맹목적으로 미화한 내용 등으로 가득차 있으며 이미 5만명이 넘는 네티즌이 이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 사이트의 ‘조선력사’라는 코너에는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며 전쟁의 중단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강도적인 무력침공 때문”이라는 북측 주장이 그대로 올라 있다. 또 이 사이트는 회원가입 신청(연회비 2000달러)을 받으면서 이 사이트 운영자에게 송금할 수 있는 홍콩의 은행계좌까지 안내하고 있다.

인포뱅크 외에도 일본에서 개설된 ‘북한중앙통신’(www.kcna.co.jp)과 재미동포연합 워싱턴지부가 제작한 ‘조국통일21’(www.tongil21.com), 일본에 도메인 등록이 돼 있는 ‘조선신보’(www.korea-np.co.jp) 등도 비슷한 내용의 사이트들.

문제는 이 사이트에 국내 네티즌들이 아무런 장애 없이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다는 점. 일부 운동권 학생들의 경우 이 사이트들을 자주 이용하고 있고 몇몇 네티즌은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개인추천코너’에 이런 사이트들을 연결해놓고 있다는 것.

민족해방(NL) 계열의 한 운동권 학생은 “과거에는 ‘구국의 소리’ 등 라디오를 통해 북한의 정보를 얻었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을 많이 사용한다”며 “사이버공간에서 북한은 더 이상 ‘금단의 땅’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계당국은 “단속할 방법이 없다”며 사실상 단속을 포기한 상태. 현재 정부는 발견된 친북 사이트를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에게 통보해 이용자의 접속을 막고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북한찬양 사이트가 많아 실질적인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또 “북한 사이트에 이적(利敵) 목적으로 접속하거나 자료를 다운받는 경우 국가보안법 7조(찬양, 고무)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현행법상 규정에도 불구하고 사이버공간의 특성상 네티즌들의 방문이 이적 목적인지를 밝히기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 실제로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북한을 찬양하는 홈페이지를 개설해 언론에 보도됐던 김모씨(20)를 구속한 사례 외에 한번도 공식적인 수사를 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 법대 정종섭(鄭宗燮)교수는 “이미 사이버공간을 통해 북한찬양 정보가 밀려들어오고 있는 만큼 정부는 북한 정보를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 것인지를 규정하고 관계 법령을 정비해 명확한 처벌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완배·차지완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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