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中 한국인 납치사건 '뒷북수사'…범행개요도 파악못해

  • 입력 2000년 2월 28일 19시 52분


중국을 여행하거나 체류중인 한국인들의 납치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으나 경찰당국이 납치조직은 물론 범행개요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등 수사가 겉돌고 있다.

28일 현재 주중 한국대사관에 신고된 최근의 한국인 납치사건만도 11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며 귀순자 조명철(趙明哲· 41·전 김일성대 교수)씨 납치사건의 경우 신고한지 한 달이 다 돼가는데도 범행 개요도 파악하지 못한 채 수사주체까지 오락가락 하는 등 경찰 내부의 수사 혼선도 극심하다.

▽수사주체 혼선〓3일 한국인 납치사건 가운데 처음으로 조씨의 피해사실을 신고받은 곳은 서울 성동경찰서. 이와 별도로 서울 성북경찰서는 21일 베이징사회과학원에 유학중이던 송모씨(31) 납치사건을 신고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몸값을 송금받은 조선족 최모씨(30·여)가 조씨 사건에도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자 24일 성동경찰서의 관련자료까지 모두 넘겨받았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하루만에 성동경찰서로 되돌아갔다. 수사인원이 부족한 사실을 뒤늦게 안 서울경찰청이 지시를 번복했기 때문.

현재 괴한에 납치돼 몸값 1500만원을 주고 풀려난 무역회사 직원 서모씨(30)사건은 서울 구로경찰서가, 1200만원어치의 금품을 주고 풀려난 무역업자 김모씨(41)사건은 서울지검이 각각 수사중이다. 공조라고는 찾아볼 길 없는 중구난방(衆口難防)식 수사인 셈이다.

서울경찰청은 수사창구 혼선에 대한 지적이 높아지자 28일 뒤늦게 수사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전담팀’을 꾸렸지만 이 역시 수사지원과 조정, 수사결과 취합만을 위한 것일 뿐 수사주체가 단일화된 것은 아니다.

▽허술한 초동수사〓수사 초기 서울 성동서는 조씨 사건의 관련자들을 조사했으나 관련자들의 진술만 믿고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그러다 납치범들에게 몸값을 전달하려 한 조선족 최씨가 구속된 것은 사건발생 3주 뒤인 24일. 경찰은 관련자들의 계좌추적도 않다가 뒤늦게 언론의 지적을 받고 시작했다.

조씨의 몸값 2억5000만원의 출처를 사건발생 3주가 지난 25일 국가정보원 보도자료를 통해 겨우 알게 된 것도 큰 문제.

▽중국과의 수사공조〓이 사건 해결의 결정적 열쇠를 쥔 사람은 환전상 장낙일씨(32). 그러나 중국과 수사공조가 안돼 그의 신병을 넘겨받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경찰이 중국당국으로부터 통보받은 내용은 중국 공안당국이 체포한 납치범 6명의 이름과 나이가 고작이다.

▽실종된 수사의지〓경찰은 조씨의 몸값 2억5000만원을 송금받은 장씨 어머니 한씨가 24일 오후 외손녀 돌잔치 참석차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한씨에 대한 출국금지신청은 물론 한씨에게 해외출국 자제요청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를 하는지 안하는지 종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박윤철·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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