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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월 28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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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한대현·韓大鉉재판관)는 27일 학생에게 체벌을 가한 혐의로 학생의 112 신고에 의해 입건된 뒤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서울 D중학교 교사 박모씨 등 2명이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를 상대로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검사가 수사를 소홀히 하고 자의적인 증거 판단으로 혐의를 인정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했다”며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기소유예’는 혐의는 인정되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고 용서해 준다는 내용의 검찰 결정.
▼"학칙따른 체벌 가능"▼
이번 결정은 체벌 허용 여부와 교사재량권을 놓고 교육계에서 논란이 지속되고 일련의 체벌관련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교권의 재량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쪽으로 판단이 내려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체벌의 수단과 정도 및 피해 정도를 면밀하게 수사해 교사의 행위가 체벌로서 허용되는 범위 내의 것이라면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해 ‘죄가 안됨’ 처분을 내렸어야 했으나 검찰은 일부 참고인 조사만으로 폭행사실이 있다며 범죄혐의를 인정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특히 “초 중등 교육법과 대법원 판례 등에 비추어 교사가 학교장이 정하는 학칙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 체벌을 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교사의 체벌에 대한 헌재의 첫 판단으로 교사의 징계권 행사 범위 안의 체벌이라면 정당한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고 말했다.
이번 헌재의 결정에 대해 교사들은 교권 실추현상이 심각한 교육현장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크게 환영했다.
▼"자의적 증거판단 잘못"▼
박씨 등 교사 2명은 지난해 4월 무단결석과 흡연 등으로 적발돼 교내 봉사활동을 하던 D중학교 3학년 박모군이 소란을 피워 교장실로 데려가 주의를 줬는데 박군 등은 112 신고를 통해 “박교사 등이 나의 뺨과 가슴 등을 수차례 때려 전치 2주의 타박상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박군과 박군 친구 등의 주장을 근거로 지난해 6월 “교사들의 범죄혐의는 인정되지만 초범이고 사안이 경미한데다 교육차원에서 체벌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참작한다”며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헌재는 그러나 “검찰이 당시 동료 교사와 다른 학생 등 목격자의 진술을 받아 폭행 여부를 판단했어야 하나 일부의 진술만으로 목격하지 않은 피의 사실까지 인정한 수사 미진과 자의적인 증거판단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 사건 대리인인 이석태(李錫兌)변호사는 “교사들이 학생을 때린 적이 없는데도 검찰이 학생의 신고만으로 유죄취지의 처분을 내려 교권 실추의 현실을 통탄하며 헌법소원을 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D중학교 한모교장은 “교권 회복의 차원에서 헌재의 결정은 의미 있는 것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한교장은 “요즘은 학생들이 사소한 꾸지람도 듣지 않으려 해 교육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한국교총 조흥순(曺興順)홍보실장은 “교권 추락과 교실 붕괴가 유행병처럼 확산되는 현실에서 헌재가 교육과 교권을 존중하는 결정을 내렸다”며 “체벌문제는 사법적 심판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되고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김은경간사는 “학교에서 행해지는 체벌의 대부분은 감정적인 것으로 교육적으로 무의미하며 폭력으로 학생을 선도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번 판결로 인해 불가피한 체벌이라는 기준이 교사의 편의주의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