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前법무의 99년]짧은 영광… 긴 치욕 구속위기

  • 입력 1999년 12월 3일 19시 15분


김태정(金泰政·58)전법무부장관의 99년은 반전(反轉)과 영욕(榮辱)이 극명하게 교차된 한 해였다.

한 법조인은 “‘혼돈과 혼란’의 세기말적 현상이 그의 한 해 삶에 그대로 압축된 것 같다”고 말했다.

1월 초 대전법조비리 사건이 터졌다. 검찰총장이던 그는 검사가 검사를 수사해야 하는 상황에 난감해 했다. 1월18일 부인 연정희(延貞姬)씨는 옷 로비 의혹 사건으로 경찰(사직동팀)의 조사를 받았다.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 1월20일 김전장관은 옷로비 사건과 관련해 연씨에게 폭언을 퍼부었고 연씨는 기절했다. 이른바 ‘최초보고서’가 이날 부부싸움 과정에서 유출됐다.

2월1일 김전장관은 대전법조비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대국민 사과문’을 읽으며 눈물을 훔쳤다.

“저 자신이 검사가 된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제 손으로 후배 검사들의 사표를 받고, 그 가족에게 평생 동안 남을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소장검사들의 연판장 파문이 일었고 야당과 시민단체는 그를 비판했다. 결국 그는 탄핵소추의 대상이 됐다. 4월7일 찬성표(145)가 반대표(140)보다 많았지만 정족수 때문에 탄핵소추는 부결됐다.

5월24일 옷 로비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그 날 단행된 ‘5·24개각’에서 그는 법무부장관에 임명됐다. 그는 ‘옷 로비 의혹’을 묻는 출입기자들에게 “이미 다 해명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웃었다.

6월1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마녀사냥식’ 비판을 하지 말라”며 그에 대한 신뢰를 나타냈다. 다음날 서울지검은 ‘옷 사건은 실체없는 해프닝이며 연씨는 결백하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6월7일 ‘파업유도 발언 파문’사건이 터졌고 다음날 대통령은그를해임했다.그러나 그것은 ‘오욕(汚辱)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8월 하순 그와 연씨는 각각 ‘파업유도’와 ‘옷 로비’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갔다. 10월 중순 특별검사제가 도입됐고 11월11일 이들은 각각 특검에 동시에 출두하는 비극적 상황에 처했다. 그는 그날 "나라에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얼마후 본보에 사직동팀 ‘최종보고서’가 보도됐고 김전장관은 이 보고서 유출의 책임을 조사받기 위해 3일 자신이 총수로 있던 대검에 소환돼 사법처리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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