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문건파문]못말리는 폭로정치…국민은 허탈하다

  • 입력 1999년 10월 29일 20시 09분


“여야가 서로에게 시커먼 연탄을 던지면서 치고받는 형국이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29일 ‘언론대책문건’을 둘러싼 여야의 대결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책임질 수 있든 없든 일단 폭로를 해 놓고 보자는 식으로 대응, 결국 양쪽 모두 검댕을 뒤집어썼다는 얘기다.

◇與 근거없이 자작극 몰아

우선 이번 사건에 대한 여권의 대응은 집권세력의 금도(襟度)를 의심케 했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25일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문건을 공개하자 여당측은 별근거도 없이 “정의원은 문서조작 전문가”라며 ‘자작극’으로 몰아붙였다.

이영일(李榮一)대변인 등 국민회의 당직자들은 27일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가 작성자라고 공개한 뒤 “전달자는 중앙일보 간부로 보인다”고까지 주장했다. 특히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은 28일 의원총회에서 “상식적으로 볼 때 중앙일보기자가 작성했으니 중앙일보 간부가 전달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문건 전달자가 중앙일보 간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몇몇 간부의 이름을 실명으로 흘리기도 했다. 과거 정권에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야당은 폭로전으로 나간다고 해도 정보가 충분하고 국정을 궁극적으로 책임져야 할 집권세력이 증거도 없이 마구잡이식 ‘설(說)’로 맞대응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록 야당이라고는 해도 한나라당도 ‘공당(公黨)’으로서 무책임한 자세를 보였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한나라당은 문건 작성자와 전달자가 모두 자신들의 주장과 다르게 드러났음에도 사과나 유감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野 강경노선 계속 고집

그러면서 본회의장 점거 농성에 이어 ‘언론말살 규탄대회’를 여는 등 강경투쟁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당내에서는 이회창(李會昌)총재의 태도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총재가 28일 오후2시경 문건 전달자인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가 찾아와 자신이 제보자라고 실토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야농성 등 강경투쟁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작성자와 전달자문제에서 우리 당의 주장이 틀린 마당에 그같은 본질 운운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지금 여야 지도부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부 기자들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여) “각본대로 진행된 언론말살”(야)이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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