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이재환-최종석씨 가족 『생지옥서 살줄이야』

입력 1999-02-01 07:47수정 2009-09-2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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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지옥이라는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다니….”

12년전 납북될 당시 미국 유학생 이재환(李在煥·37)씨와 동진호 선원 최종석(崔宗錫·53)씨의 가족들은 지난달 31일 이들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는 소식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가 납북된 것은 87년 7월. 당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이수하던 이씨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소식이 끊겼다.

당시 북한은 이씨가 “제삼국을 통해 의거입북했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이씨의 아버지 이영욱(李永旭·68·전국회의원)변호사와 어머니 변양자(卞良子·63)씨는 “평소 북한정권에 관심조차 없던 아이가 자진 월북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이변호사 부부는 “88년 남북적십자회담 때 북한기자로부터 ‘아들이 결혼해 딸까지 낳아 잘살고 있다’는 소식을들었을땐 살아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용소에 갇혀있다니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때마침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이씨의 집에 모였던 10여명의 친지들도 이씨의 수용소 감금소식에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이었다.

변씨는 “정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억울하게 납북된 사람들을 가족의 품으로 데려와야 할 것”이라며 “적십자나 국가정보원 등 관계기관을 통해 구명을 호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기잡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남편의 생사조차 모른 채 살아온 동진호 선원 최씨의 부인 김태주(金太姝·51·부산 사하구 당리동)씨는 “남편이 꼭 살아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며 눈물을 쏟았다. 최씨는 87년1월 동진27호를 타고 다른 어부 12명과 서해 백령도 부근 공해상에서 납북됐다. 아들이 북한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몸져 누운 어머니는 끝내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95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수용소 감금소식을 전해들은 최씨의 출가한 딸 우영씨(29)는 어머니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남편이 갑자기 돌아올 경우 혹시 집을 못찾을까봐 현재까지 두차례나 이사하면서도 옛 전화번호를 그대로 쓰고 있다는 김씨는 “불과 2,3년전까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에 있는 남편에게 틈틈이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부와 북한 당국이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남편의 귀환을 위해 노력해주길 바란다”며 “살아돌아올 그날까지 건강하기만을 빈다”고 말했다.

〈박정훈·박윤철기자〉hun3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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