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부 6개월 점검 좌담(下)]사회-교육-문화분야

  • 입력 1998년 8월 25일 19시 54분


▼김학준총장〓오늘은 사회 교육 문화 부문에서 지난 6개월 동안 김대중(金大中)정부가 보여준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비전을 갖고 있으며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한상진교수〓우리 사회에는 그동안 지역 계층 남녀 면에서 많은 차별이 존재해 왔습니다. 앞으로 이런 차별을 해소하고 동등한 기회를 향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우리 사회의 철학입니다. 다들 같이 사는, 이른바 ‘공생적 시민사회’ 개념이 필요한데 문제는 전대미문의 실업사태와 이로 인한 극단적 병리현상을 정부나 사회의 힘으로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입니다. 노사가 협력하는 새로운 전통과 신노사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김덕중총장〓김대중대통령의 철학, 예를 들어 참여민주주의는 교육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과거에도 교육개혁은 계속 있어왔지만 그때는 대부분 제도를 바꾸는 차원이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나라는 인력배분이 한 쪽으로 치우쳤습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과학자도 되고 벤처기업가 등 창의적인 사람도 돼야 하는데 대부분이 법대 의대 경영대 등 인기분야로만 가버렸습니다. 새 정부는 입시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등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정하고 새 프레임워크(구조)를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21세기형 인간, 즉 21세기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을 배출하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김학준〓새 정부가 인권신장과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새로운 계획에 대한 국민의 신뢰입니다. 많은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니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게 말장난, 헛구호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또 지나치게 결과의 평등과 복지를 강조하다 보면 우리경제의 핵심인 자유경쟁 논리가 죽을 수 있습니다.

▼한〓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해야 하는데 실업문제에서는 현실적으로 딜레마가 많습니다. 경쟁논리를 살리기 위해 구조조정 작업을 하다보니 1백80만∼2백만명이 넘는 실업자가 나오게 생겼습니다. 정부는 10조원에 달하는 재원을 투입하는 등 전력하고 있지만 실업대책이 실업자들에게 피부에 와 닿을만큼 잘 집행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행정체계의 효율적인 통합이나 부처간 연계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관련 집단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자기이익과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배타적 자세가 계속되면 정말 해결이 어려울 것입니다. 신뢰를 획득하려면 이런 집단이기주의에 결연하게 대처하고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범법 불법행위를 추방해야 합니다.

▼김덕중〓김대중정부는 역대 정권이 하던 교육개혁을 그대로 받아서 어떻게 실천할 것이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원칙을 갖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입시제도를 바꾸면 학부모 학생이 불안해 하는데 그런 불확실성을 없애줘야 할 것입니다. 실업문제의 경우 지금의 정부는 옛날과 달리 고용창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기업을 살려 실업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지금처럼 기업하는 사람이 죄인시 되는 상황에서는 어려울 것입니다.

▼김학준〓두 분 말씀에 참여민주주의가 중요하다는 게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참여하고 어려움을 서로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그런데 정부가 추진하는 제2의 건국운동은 참여민주주의 정신과 어긋나게 진행된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들도 반발하고 있고요.

▼한〓제가 알기로는 정부가 제2의 건국운동에 시민단체를 동원한다든지 하는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2의 건국운동을 위해서는 시민운동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우리사회의 발전은 한편으로는 정부주도, 다른 한편으론 대기업 중심으로 이끌려 왔는데 오늘 시점에서 보면 정부와 기업만이 아니고 양식과 지식을 가진 제3부문, 즉 시민사회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시민사회 영역이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고 사회 각 부문에 영향력을 가져야 합니다.

▼김학준〓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겪어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헌법보다 상위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소위 ‘떼법’, 떼를 쓰면 다 해결된다는 것이지요. 앞으로는 이런 떼쓰기보다 원리원칙 법치주의 사회기강이 확립돼야 한다고 보는 데요.

▼김덕중〓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대학만 하더라도 총장실이 그렇게 넓을 필요가 없습니다. 각 분야의 지도자들 가운데 스스로 앞장서서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김학준〓관공서 장들의 집무실부터 대폭 축소해야 합니다. 부속실 판공비 업무추진비도 대폭 줄여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려면 이른바 위에 있는 사람, 상류층부터 국민에게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정치의 본질은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한〓제2의 건국 운동과 관련해 정부는 기업 은행 노조에 변하라고 요구하는데 정부 스스로 먼저 구조조정을 하고 개혁을 실천하라는 요구가 많습니다. 법치의 확립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번 현대자동차사태는 이 문제를 현상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입법화된 정리해고를 관철하기 위해 경찰을 투입하는 것은 정당한 절차입니다.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의 수용을 거부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산업현장에서 노조의 자발적 협력과 동의하에 법치를 확립해야 할 것입니다. 기업에 정리해고의 권한을 보장하되 기업은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사회공존을 고려하면서 기업을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김덕중〓우리 사회는 역할구분이 애매모호한 것이 문제입니다. 기업의 경영은 경영진과 주주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근로자는 경영진과의 합의사항만 잘 이행하면 됩니다. 이같은 선이 분명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한〓대학은 나름의 대학자치이념이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과제일 것입니다. 초중고의 경우 교사가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학교운영에 참여하듯 대학도 구성원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김덕중〓참여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참여하느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권위주의적으로 모든 것을 위에서 지시해 아래에서는 마지못해 참여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자발적인 참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고 참여시 분명한 역할을 정해줘야 할 것입니다.

▼한〓현 정부의 개혁에 대해 말들이 많고 또 결연한 행동이 뒤따르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인식이 일각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잡다한 키(열쇠)를 사용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개혁의 핵심, 정곡으로 들어가는 키를 잡아야 하는데 교육의 경우는 아주 정확한 키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고급두뇌를 자립생산하려는 시도도 해야 합니다. 지금은 너무 해외의존도가 높습니다.

▼김덕중〓지금까지 고등교육은 전부 해외에 맡겨 왔지만 앞으론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등 여건이 되는 학교부터 대학원 중심대학이 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일본처럼 박사는 국내에서 하고 외국엔 1년쯤 가서 동향을 배워오는 거죠.

▼김학준〓경제상황이 안 좋으니 학술 문화부문에 위축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대학연구비나 지원금을 줄이고 지방자치단체도 문화 예술 학술단체에 대한 지원이 막히고 있습니다. 각종 학회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요.

▼김덕중〓이제는 우리가 학술기금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교수들이 펀드(자금지원)를 받으면 정말 연구에만 써야지, 자기집 구들장 고치는데 쓰는 일이 있어선 안됩니다.

▼한〓겉치레식의 학술행사도 고쳐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필요한 외국사람을 불러서 배워야 하는데 지금은 일과성 행사에 그쳐서 남는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런 것도 없애야 할 거품입니다.

▼김학준〓세계화의 물결이 더욱 거세게 닥치고 그것이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문화충돌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민족주의 전통, 심지의 배외주의적 경향이 강한 나라에서 이를 어떻게 잘 조화시키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한〓일각에서는 지금의 상황을 ‘제2의 개항’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백20년 전과 비교할 때 국민의식 수준이 향상돼 있고 서구문물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의식구조는 상당히 개방돼 있는데 실제 제도나 심층의식은 아직도 민족적인 자기 정체성(正體性)과 뿌리 의식이 굉장히 강합니다. 문제는 현실이 이런 의식과 정반대로 간다는 겁니다. 결국 세계화를 피해의식으로 바라볼 것이냐, 아니면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입장에서 볼 것이냐는 문제가 남게 됩니다. 이제까지는 당하는 입장에서만 생각해 왔지만 앞으로는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세계를 향해 나가는, 새로운 기류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김덕중〓프레임워크를 바꾸고 새로 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동북아 전망과 관련해서도 한국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 일본에 가까울 것인지, 아니면 중국에 가까울 것인지를 정해야 하죠.

▼한〓이제까지 우리는 ‘하면 된다’는 믿음과 자신감으로 발전해 왔는데 좋지 않은 의미에서 우물안 개구리가 됐다고 봅니다. 성공에 취해서, 이제까지 해 왔던 모델로 계속 가면 다 될 것처럼 생각하다보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변하는지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김학준〓김대중 대통령은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여는 대통령입니다. 아주 중요한, 세기적인 전환기인데 이런 때일수록 문화의 힘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정신적 풍토가 어떻게 형성됐느냐, 세계를 이해하는 우리의 마음자세가 어떠하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리〓이진녕·송상근기자〉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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