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비리 수사]元준위 감형조건 「청탁고객명단」확보

  • 입력 1998년 6월 12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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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검찰이 서울지검에 통보한 청탁자만 1백38명. 군의관 등 현역군인과 병무청직원 다수가 가담한 병무비리 커넥션은 가히 충격적이다. 모두 4백여명 정도로 알려진 청탁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전화가 언론사에 빗발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수사 착수와 전개, 발표과정에서 숱한 뒷말을 낳고 있다.

액수로는 건국 이래 최대규모인 이번 병무비리가 표면에 드러난 것은 4월경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수사를 둘러싸고 군 수사기관들은 처음부터 마찰을 빚었으며 자칫하면 수면아래로 잠길 뻔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애당초 군검찰이 아니라 국방부 합동조사단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 합조단은 4월 합참 문서수발담당관인 김성국준위(53)가 카투사병 선발과 관련해 거액의 금품을 수수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합조단은 김준위를 붙잡아 수사했으나 확인된 수뢰액수가 적다는 이유로 강제전역시키기로 결정하고 군고위층의 결재까지 받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군검찰이 합조단의 이같은 처리 방향에 의혹을 제기, 김준위의 신병을 확보해 별도로 수사에 들어갔다는 것. 군검찰은 이 과정에서 김준위가 1천3백만원을 청탁자 유모씨에게서 받은 것을 확인했으며 금품수수가 모두 전 병무청 모병연락관 원용수(元龍洙·53)준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을 밝혀냈다. 병무비리의 ‘뿌리’인 원준위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군검찰은 즉각 원준위를 구속하고 수사를 확대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원준위가 “파기하라”며 부인에게 건네준 것으로 전해진 ‘청탁고객 리스트’를 확보하기 위해 감형(減刑)을 조건으로 원준위의 부인에게서 리스트를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검찰은 또 전 병무청파견 합조단 소속 군수사요원인 박노항원사(47)를 이번 사건의 두번째 핵심인물로 지목, 박원사의 병무청 내 사무실을 덮치는 과정에서 합조단과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사는 현재 수배중이다.

한편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병역면제 수법도 화제다. 검찰수사에 따르면 자기공명촬영(MRI)필름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꿔치기하거나 팔을 비틀어 촬영해 환자로 둔갑하기도 했다. 또한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정신병자 행세를 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주범인 원준위는 △병역면제 1천5백만∼4천2백만원 △카투사병 선발 5백만∼1천만원 △공익근무요원 판정 2백만원 △주특기변경 또는 입영연기 1백만원 등 종류별로 다양한 가격을 책정해 1백38명으로부터 모두 5억4천만원을 챙겼다.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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