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8년 6월 9일 19시 4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민추협 대변인을 지낸 국민회의 한광옥(韓光玉)부총재는 “서울대생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과 연세대생 이한열(李韓烈)군의 시위도중 사망사건은 독재정권의 말기현상을 보여준 것”이라며 “6·10민주항쟁은 민심이 떠난 정권에 항복을 촉구하는 최후의 일격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어 “당시 동아일보는 독재권력의 억압 속에서도 나름대로 민주화투쟁의 목소리를 전하려고 노력했다”면서 “특히 고문과 인권침해 등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진실을 알리려 했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민추협 기조실장을 역임한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부총재도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으로 촉발된 민주화항쟁은 이한열군의 사망으로 제도권 정치인도 참여하는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승화됐다”며 “이를 계기로 서울시내의 ‘넥타이부대’와 지방의 시민들이 시위에 적극 동조, ‘6·29항복선언’을 이끌어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독재권력의 탄압으로 언론이 이를 제대로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일부 언론은 탄압을 뚫고 진실을 알리려고 몸부림쳤다”면서 “특히 동아일보가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을 집요하게 추적, 민주화를 촉진하고 정국의 흐름을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민추협 부간사장이었던 국민회의 김병오(金炳午)구로을지구당위원장은 “6·10민주항쟁은 민주화 달성과 함께 50년만에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루는데 초석이 됐다”고 평가한 뒤 “그 과정에서 동아일보가 다른 신문에 비해 박종철군 사건 등을 적극적으로 보도해 민주화 세력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민추협 공동의장직무대리를 지낸 국민회의 김상현(金相賢)의원도 “6·10민주항쟁은 온 국민의 동참에다 동아일보의 반독재 필봉이 가세해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추협출신 인사들의 한결같은 평가처럼 오늘의 민주화는 온 국민의 민주화 열망과 함께 독재에 굴하지 않은 동아일보의 보도가 밑거름이 됐음은 분명하다.
〈양기대기자〉k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