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 원칙이 없다…마구잡이 소환에 밤샘조사 예사

  • 입력 1998년 4월 29일 19시 40분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이 지난달 21일 서울지검 특별조사실에서 자해소동을 벌인 지 한달여만인 23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밤샘조사를 받던 ㈜한솔제지 이명철(李明喆)자금담당상무가 자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검찰 조사실에서 자해 물의가 잇따라 빚어지는 데 대해 법조계에서는 “수사의 기본기가 흐트러진 결과”라는 지적과 함께 “김영삼(金泳三)정부의 경제실책에 대한 수사가 여론을 의식해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수사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비판의 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 사건경위

검찰은 21일 오후11시20분경 이씨를 참고인으로 소환, 한솔그룹의 비자금 조성여부를 추궁했다.

검찰은 이씨가 한솔PCS 조동만(趙東晩)부회장의 공금 유용 사실을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부회장이 혐의를 부인하자 22일 오후9시경 조사실에서 조부회장과 이씨를 배석자 없이 10여분간 만나도록 했다.

이씨는 소환된 지 약 32시간이 지난 23일 오전7시경 수사관이 진술조서를 프린터로 출력하는 사이에 침대 옆 탁자에 머리를 수차례 찧었다.

이씨는 이를 말리는 수사관 3명과 한솔그룹 직원 2명의 제지를 뿌리치고 책상에 놓여있던 문구용 가위로 목부위를 찔러 약 1㎝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이상무는 병원에서 상처부위를 치료받고 귀가했다.

검찰은 이같은 사실을 은폐해오다 뒤늦게 사건이 공개되자 “강압이나 가혹행위는 없었으며 사소한 사건이라 총장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 수사의 문제점

검찰은 사전에 충분한 내사작업을 거쳐 증거를 확보한 상태에서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바람에 마구잡이식으로 기업 임원과 직원, 공무원들을 불러 자백을 강요하는 식으로 수사를 벌여왔다.

이 때문에 수사가 조사대상자를 윽박지르고 모멸감을 주는 식이고 인권차원에서 금기시되는 밤샘수사도 되풀이되어 왔다. 게다가 권전안기부장의 자해소동으로 홍역을 치른 검찰이 조사실에 자해에 사용할 수 있는 가위를 내버려둔 점이나 상사의 혐의를 진술한 참고인과 상사를 대면하게 한 것 등은 수사기법의 기본에도 어긋나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 법조계의 비판

대한변협 인권위원장 하경철(河炅喆)변호사는 “밤샘수사나 피의자와 참고인의 자백을 강요하는 수사는 사라져야 한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빨리 설치해 수사과정의 인권침해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 특수부 출신 변호사는 “자백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예민해 항상 감시해야 하며 상사의 비리를 밝힌 참고인을 상사와 단 둘이 만나게 한 것은 기본이 안된 수사”라면서 “중수부의 수사가 자백만 강요하는 ‘이실직고(以實直告)’형 수사라는 비판이 여러 곳에서 들린다”고 말했다.

〈하준우·조원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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