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송상근/결혼식장의 「부나비」

  • 입력 1998년 3월 15일 21시 42분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신반포2동 남서울교회에서 열린 김중권(金重權)대통령비서실장의 장녀 혼사에 정관계 고위인사 1천여명이 참석, 이들이 몰고온 고급 승용차 때문에 일대가 크게 붐볐다.

처음엔 김실장이 시대 상황을 모르고 처신을 그르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때 ‘신(新)실세’소리를 듣는 공직자가 어쩌자고 요란스러운 결혼식을 치렀을까.

사정을 알아보니 혼주측에선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고 축의금과 화환도 받지 않았다. 식사도 대접하지 않았다. 차량 혼잡도 고속도로 입구 근처여서 평소에도 붐비는 곳이라 체증을 더한 정도였다. 나름대로 모범적이고 검소하게 혼례를 치렀다는 얘기다.

정말 지나치기 어려운 건 실력자 집안의 혼사를 귀신같이 알아내 ‘눈도장’을 찍는 세태다. 하객중에는 양가 친인척이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실장과 개인적인 인연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들까지 뭔가를 의식하고 찾아갔다는 사실이 씁쓸한 대목이다.

선거때만 해도 현 집권측과 전혀 다른 정견을 펴던 사람들조차 선거직후 한자리를 차지하려고 말을 바꾸고 지연 학연 등 온갖 연줄을 내세워 ‘단물’을 찾아 기웃거렸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비서실장 딸의 혼사까지 챙기느라 북새통을 빚었다.공직자들은 이러한 ‘부나비’들을 의식해서 앞으로도 신중한 처신과 품위있는 언행을 잃지 않아야 한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해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고 결국 쇠고랑 찼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가신들을 상기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부나비’는 불빛만 보고 좇는 존재들이다. 체면도 도덕도 팽개친다. 그 집요한 공세를 뿌리치지 못한 집권측의 사람들이 어떠했는가는 지금까지 수없이 보아왔지 않는가.

송상근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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