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눈에는 자기 자식이 모두 천재로 보인다더니 우리 딸은 우리집의 1등 개그맨이다. 할아버지께서 순한글로 지어주신 이름(남보다 무엇에서든 보다 나으라는 의미의 ‘다나’)덕인가.
또래보다 조숙한 딸아이 다나의 언행이 항상 새롭다. 지난해 겨울 박찬호선수가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릴때 채 세돌도 안된 다나는 한 TV광고를 보며 단호한 표정으로 딱 잘라 말했다. “엄마, 나 박찬호랑 결혼하고 싶어.”
박찬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놀라운 내게 결혼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왜?” “박찬호가 다나 예쁘대. 그리고 박찬호는 멋있잖아.” 착각은 자유라고 했던가. 결혼이 자기만 좋다고 되나. 좋게 말해 상상력이 풍부한 것인가.
얼마전에 함께 목욕을 하는데 자기와는 다른 엄마의 가슴을 부럽다는 듯 바라보며 툭 내던진 말. “엄마는 가슴이 크네. 다나도 전에는 컸었는데 아빠처럼 작아졌어. 잠자면 또 커질거야.”
동화책 한권을 읽어주면 독후감을 대화로 주고 받는 훈련에 익숙해진 다나는 어느날 콩쥐팥쥐를 실감나게 읽어주자 책을 덮기가 무섭게 “엄마. 다나는 팥쥐처럼 살래. 팥쥐가 더 좋아.” 의외였다. 신데렐라 백설공주에 공주라는 공주는 다되고 싶은 아이가 한국판 공주인 콩쥐가 아닌 심술쟁이 팥쥐가 되고 싶다니 말이다.
“왜? 콩쥐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착한데. 나중에 잘 생긴 도련님하고 결혼도 하고.” “그래도 싫어. 콩쥐는 더러운 옷만 입고 힘들게 일하고 맨날 울잖아.” 그리고 한술 더 뜬다. “엄마가 새 엄마해.” “왜?” “콩쥐만 혼내주고 팥쥐는 예쁘다고 하니까. 엄마 나 옷도 사주고 잔치도 가야지.”
자기 엄마랑 살고 싶고 당장 혼나고 싶지 않은 아이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고생끝에는 낙이 온다는 해피엔딩의 미래를 가르쳐주고 싶어 나도 한치도 양보할 수가 없었다. “팥쥐는 나중에 결혼도 못하잖아. 그래도 좋으니?”
“엄마 팥쥐는 박찬호랑 결혼해.” 아무래도 박찬호의 결혼식날 TV도 신문도 모두 치워야 할 것 같다. 다나는 장난이 아닌 듯하다.
이혜령(경기 안산시 월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