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지은희/아직도 못푼 「위안부의 恨」

  • 입력 1997년 8월 13일 19시 56분


『우리는 꽃다운 14, 15세 나이로 일본군인에게 강제로 연행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괴로움을 당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아직도 잘못을 반성하지 못한 채 틈만 나면 피해자들을 현혹,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 과거 전쟁시에는 우리의 몸을 욕되게 하더니 이제는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려 하고 있다. 우리는 위로금으로 일본땅 전부를 준다고 해도 받을 수 없다.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시절을 고스란히 돌려줄 수 없다면 국제법에 따라 똑똑히 사죄, 배상하라…』 ▼ 일본땅을 다 준다 해도…▼ 일본군 「위안부」였었고 화가이기도 했던 강덕경할머니의 장례식에서 같은 「위안부」피해 할머니가 이렇게 절규했다. 광복52년이 되기까지 우리는 왜 이런 피맺힌 호소를 들어야 하는가. 가장 큰 책임은 일본정부에 있다. 일본군 「위안부」제도는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다. 보스니아에서처럼 전쟁시의 집단강간이나 군대가 의도적으로 행한 성폭력과도 다르다. 일본군 「위안부」제도는 정부와 군대가 체계적으로 기획, 12만∼20만명의 식민지소녀들을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속이거나 강제로 끌어다 성노예로 삼은 것이다. 이 소녀들은 말도 모르고 가본 적도 없는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태평양군도에 이르기까지 일본군대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천황의 하사품」으로 보내져 군의 엄격한 감시 아래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대전(大戰)후 이들은 철저히 버려졌다. 우리가 95년 중국 무한에서 11명의 버려진 「위안부」할머니들을 찾아냈을 때 그 할머니들은 이미 고국을 방문할 수도 없을만큼 쇠약했고 생활도 처참했다. 캄보디아의 훈할머니도 숱하게 버려진 피해자 중 1명이다. 이미 국제사회는 일본군 「위안부」제도를 비인도적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일본정부의 법적책임이행과 사죄, 역사교육, 책임자처벌 등을 권고했다. 미국정부는 그 책임자를 전쟁범죄자로 규정해 입국금지조치를 취했다. 미국하원은 9월초 할머니들의 증언을 청취해 보다 구체적인 조처를 취하려 하고 있다. 일본정부의 다양한 로비에도 불구하고 국제노동기구(ILO)는 「위안부」제도가 강제노동금지조약을 위반한 것으로 규정, 일본정부의 책임이행과정을 지켜보며 98년 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이런 국제적 압력에도 불구, 일본정부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범죄행위임을 여전히 부정, 사죄 배상 책임자처벌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단지 인도적 차원에서 할머니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할 것을 주장한다. 그래서 일본은 정부가 사무비와 광고비를 대고 민간기구를 만들었다. 그것이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이다. 일본은 이 기구를 통해 국민모금을 해서 할머니들에게 5백만엔씩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요컨대 일본정부는 법적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다수 할머니들이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 「국민기금」수령을 거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점까지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우리는 피해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성을 되찾는 일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가. ▼ 명예회복 함께 나서야 ▼ 일본정부를 상대로 힘겹게 싸우는 피해할머니들을 외롭게 해서는 안된다. 70평생을 처절하고 힘들게 살아오신 할머니들이 돈을 앞세운 일본정부의 유혹 앞에 또다시 무너지게 할 수는 없다. 이제는 우리 국민과 정부와 기업이 할머니들과 함께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야 한다. 일본정부로 하여금 국회결의 사죄, 정신적 물질적 배상, 책임자 처벌, 역사교육 실시를 하도록 만드는 일이야말로 역사를 바로 세우고 한일관계를 바로잡아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는 일이다. 지은희(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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