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시위 도심마비…31일 출법식 무산 항의시위

  • 입력 1997년 5월 31일 20시 14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출범식 행사가 연 이틀째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31일 대학생 1만2천여명은 종로와 대학로 등 서울도심 곳곳에서 밤늦게까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종로 동대문 왕십리 등지의 도로가 이날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극심한 체증을 빚었다. 경찰은 이날 한양대 주변에 53개 중대 6천8백여명의 병력을 투입, 학생들의 출입을 막고 서울대 등 제2의 장소에서 출범식이 열리는 것을 막기 위해 1백84개 중대 2만2천여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주요대학 주변에서 검문검색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이날 밤8시반에 열릴 예정이던 출범식 본행사를 비롯, 행사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에 앞서 서울대 고려대 중앙대 등 서울시내 10여개대에서 30일 밤을 보낸 1만2천여명의 학생들은 31일 오전 일제히 「한총련 출범식 사수 결의대회」를 가진 뒤 오후 3시경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모여 집회를 가졌다. 이들중 2천5백여명은 오후 2시반경 서울대 숭실대에서 대학로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에서 한꺼번에 내리는 바람에 이 일대가 극심한 교통혼잡에 시달렸다. 특히 대학로 일대는 공공부문노조대표자회의 소속 근로자 2천여명이 오후 1시경부터 「97년 임단투 승리 결의대회」를 가진 뒤 학생시위대와 섞여 혼잡이 가중됐다. 집회를 마친 학생들은 오후 5시경부터 6차로도로를 따라 종로 진출을 시도하며 곳곳에서 경찰과 대치하거나 충돌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까지 대학생 3백30명을 연행, 이중 1백11명을 훈방조치하고 나머지 대학생들에 대해 시위가담 여부를 조사한뒤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한총련측은 『경찰이 대회장소를 원천봉쇄하는 바람에 출범식을 거리에서 국민대회 형식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총련은 1일 정오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예정된 국민대회를 강행할 방침이어서 휴일 도심에서 또 한차례 교통혼잡과 경찰과의 충돌이 예상된다. 〈이철용·이명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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