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9시20분경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 金元瀅(김원형·57)씨는 어머니 車順德(차순덕·82·미국 뉴욕 거주)씨가 쌍둥이 동생 仁瀅(인형)씨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서자 어머니 앞에 무릎 꿇고 큰절을 올렸다.
『그래… 너구나…』 차씨는 아들의 품에 얼굴을 묻고 『이 아이들이 무사하게 넘어올 수 있도록 보살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도를 올렸다.
46년 동안 이산가족으로 애태우다 극적으로 혈육의 정을 다시 나눈 어머니와 아들은 회한과 감격에 겨워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서로 얼싸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미국 뉴욕에서 어머니 차씨와 함께 이날 오전 6시15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인형씨는 눈물을 숨기려 어머니와 형의 상봉장면을 짐짓 외면했으나 희성(20) 희근씨(29) 등 조카들을 차례로 껴안으며 끝내 눈시울을 적셨다. 이들의 감격적인 상봉 뒤엔 쌍둥이 형제가 이뤄낸 기적이 있었다.
1.4후퇴 때 생이별한 뒤 한시도 북한에 남겨둔 쌍둥이 형을 잊지 않았던 인형씨는 수소문 끝에 지난 91년 재미교포 신분으로 어머니와 함께 북한에 들어가 원형씨를 만났다. 이후 두 형제는 수시로 연락하며 탈출방법을 모색했다. 감시의 눈길을 피해 중국에서 두세 차례 직접 만나기도 했다. 지난 3월초 구체적인 탈출계획을 듣고 인형씨는 형에게 배와 식량을 구입할 자금 2만달러를 건네주었다. 이같은 치밀한 준비 끝에 원형씨 가족은 安善國(안선국·47)씨 일행과 함께 32t 목선에 몸을 맡긴 채 2박3일간 거친 풍랑을 헤쳐 마침내 자유의 품에 안긴 것이다.
이들의 기적적인 탈출은 또한 김원형씨와 안씨간의 단단한 동지애와 긴밀한 협력없이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김씨가 처음으로 탈출계획을 세우고 자금을 마련했다면 안씨는 항해술과 해안 및 국경감시에 대한 깊은 지식으로 탈출의 전과정을 빈틈없이 이끌었다.
안씨는 특히 김씨의 가족상봉에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분위기를 주도하며 탈출과정에 대한 질문에 시종일관 차분한 자세로 담담하게 증언, 항간의 의혹을 가라앉혔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씨의 장남 일천군(12)은 『무엇이 가장 먹고 싶고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과일이 가장 먹고 싶다. 고등중학교를 마친 뒤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또박또박 대답,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철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