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날 金炳琯(김병관)발행인의 연두제언을 통해 국민통합의 의식혁명을 제의했던 동아일보는 제언의 구체화를 위해 지난 3월4일부터 이달 15일까지 15차례에 걸쳐 「새 공동체를 위하여」시리즈를 게재했습니다. 이제 시리즈를 마치면서 「새 공동체」구현과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 좌담을 마련했습니다.》
▼김학준총장〓동아일보가 지난 3월 시작한 「새 공동체를 위하여」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자리입니다. 동아일보 발행인의 연두제언과 맞물려 시작된 이 시리즈는 사회 곳곳에서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공동체가 해체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던 시점에 때맞춰 나온 반가운 기획이었습니다.
▼김태길명예교수〓언론에서 우리 공동체를 위한 시리즈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싶던 차에 나온 매우 뜻깊은 기사였어요.
▼장상총장〓사회 심층부로부터 문제의식이 끓어오르던 시기에 이를 공론화한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공동체라는 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곧 통일공동체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지요. 이 시리즈에서는 우리 문제의 핵심이 정신적 차원에 있음을 정확히 짚었고 「나로부터의 개혁」을 제안, 우리 사회를 한단계 성숙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김총장〓동감입니다. 공동체, 영어로 커뮤니티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책임을 함께 진다는 뜻이 있습니다. 공동체에 문제가 생긴다면 나도 책임이 있고 따라서 문제 해결에 응분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 커뮤니티의 개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남의 흠만 따지고 자기 반성을 하지 않아 문제를 풀지 못해왔습니다. 남을 비판하기 보다 자신의 문제점을 돌이켜 보자는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확대한다면 21세기에는 새 공동체를 가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김교수〓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가족 중심의 공동체 의식이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가족이 약화되면서 이를 대신할 새 공동체 의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각자가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반면 「우리」의식은 사라졌지요. 이때문에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하는 운동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동아일보 발행인의 연두제언, 이번 시리즈기사와 연계해 종교 대학 사회단체에서 새 공동체를 위한 운동이 전국적 지속적으로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장총장〓동의합니다. 이만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김교수〓독자들의 의견참여가 짧지만 인상적이었습니다.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을 만나 취재한 기자들의 노력도 돋보였습니다.
▼장총장〓기사를 읽으면서 「왜곡된 집단주의」가 큰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우리사회에 공동체 의식은 없어도 집단주의는 존재합니다. 서양은 합리성을 사회 운영원칙으로 삼는데 비해 동양에서는 인연을 중시하지요. 연(緣)을 따지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지역감정이나 학연 지연등 연이 불행한 역사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왜곡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당성없는 권력과 법체제가 인연 위주의 공동체의식을 왜곡시킨 것이지요.
패거리 집단주의가 문제
▼김총장〓그렇습니다. 시리즈 중 「패거리 정치」에서도 지적됐듯이 우리나라는 정치 학교 할것없이 전부 패거리입니다. 패거리에끼면함께득세할수있고몰락하면 개인의 능력 자질과 상관없이 함께 쓰러집니다. 원리 원칙보다 줄을 잘 서는게 중시되는 것이지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가신(家臣)정치와 돈 많이 쓰는 정치도 패거리에서 생겨난 문화가 아닙니까.
그런데 21세기를 앞둔 지금 패거리주의가 오히려 심화되고 있어 답답합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려는 주자들도 말로는 21세기를 지향하지만 하는 짓은 패거리 키워 권력을 잡겠다는것 같습니다. 21세기가 과연 정치를 통해 혁신될 수 있을지 의문마저 갖게 합니다.
유권자들 의식 달라져야
▼김교수〓대통령선거 주자 얘기를 하셨는데 그들의 수준이 국민 전체의 의식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유권자들의 의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도 달라질 수 없다고 봅니다. 특히 이번 대통령 선거는 돈 안드는 선거, 누가 우리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똑바로 보고 찍는 선거가 돼야 할 것입니다.
▼김총장〓우리 사회의 비극은 정치에 있습니다. 공동체를 건설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일차적 목표인데 우리는 정치를 통해 오히려 공동체가 깨지고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지 않습니까. 정치를 바로잡는 일이 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핵심적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총장〓우리 정치인들은 자유민주주의 질서와 시민사회의식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배출된 면이 있습니다. 30여년이나 군사독재 질서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민주 사회의식을 학습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자유민주의식과 시민사회의식이 발휘돼야 합니다. 돈안쓰고 연에 휩싸이지 않는, 투표권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행사할수 있는 국민의식을 서로 부추겨야 합니다.
▼김총장〓그런데 우리 사회의 문제를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것도 심각한 일입니다. 공교육을 못믿어 과외에 치중하고, 치안도 국가를 못믿어 보디가드를 두는 세상 아닙니까. 이러다 보니 왜곡된 개인주의가 나오고 국가를 믿지 못하겠으니 각자 해결하자는 생각이 깊어갑니다.
이제는 국가라는 제도를 충실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공교육에 혁명적 투자를 해서 학교에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어야 과외가 사라집니다. 치안도 국가가 철통같이 해줘야 국가에 대한 충성과 신뢰가 생길 것입니다. 공공제도를 충실히하는 정치가 21세기의 과제입니다.
▼김교수〓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교육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과 동시에 교육의 방향과 내용도 바꿔야 합니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교육에서 인성교육으로 말입니다. 우리사회 전체가 잘못 돌아가는 것도 바로 교육때문입니다. 좋은 정치가가 나와 교육 바로잡기부터 전체 나라살림까지 잘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장총장〓우리사회가 가정의 합리성과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목표지상주의로 나가고 있는 점도 잘못된 교육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입니다.
▼김총장〓교육문제 해결과 함께 북한과 민족 평화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는 것도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최근 북한 붕괴론이 나오면서 국민들 사이에서도 통일의 분위기는 성숙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리도 경제사정이 어려운데 북한이 붕괴해 흡수통일이 이뤄지면 남북이 공멸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세워야할 민족 평화공동체와 관련해 지금부터 대비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김교수〓남북문제는 정말 풀어야 할 일이 많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통일후 큰 비용이 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경제력을 키워 이에 대비해야 하는데 생산력만으로 이를 감당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소비를 줄이고 저축해서 통일후 남북이 함께 고생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통일에 대해 국민들이 혼돈된 생각을 갖지 않도록 정부가 뚜렷하고 일관된 통일정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만이라도 연에 따라 나뉘지 말고 하나의 공동체로 단결, 북한을 껴안을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장총장〓통일이란 21세기를 앞둔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21세기를 위해 저는 여성의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서구 경제가 남녀가 함께 하는 「두 발 경제」인데 비해 우리는 남자들만 애쓰는 「외발 경제」입니다. 여성의 창조적 에너지를 개발해야 선진국 대열에 설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여성없이는 21세기도 없다고 믿습니다. 우리도 「두 발 경제」로 가야 통일후 두 발로 설 수 있습니다.
▼김총장〓좋은 말씀입니다. 과소비와 허례허식의 억제가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 뿐 아니라 북한을 감싸고 통일을 이룰수 있는 단서가 될 것입니다.
지도층인사 모범보일 때
▼김교수〓부정부패 정경유착 대형사고등 우리사회의 모든 불행한 사태의 바탕에는 가치관의 잘못이 깔려 있습니다. 가치체계가 전도된 것이지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돈 지위 재물 향락과 같은 외형적 가치만 추구하고 있습니다. 인격 생명 종교 예술 학문 사랑 자유 같은 내면적 가치가 더욱 상위인데 말입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모방의 대상이 되는 지위높은 이들, 사회지도층 인사, 스타들이 먼저 내면적 가치로 전환하는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치관의 큰 변혁 없이는 문제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장총장〓경제가 발전하면서 내면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상실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우리에게는 「나만이라도」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차츰 「나 하나쯤이야」에서 「나만은 예외」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을 「내 탓」 「나부터」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신바람을 좋아하지요. 그런데 바람이 밤낮 불수는 없으므로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 공동체를 위한 운동도 일관성있게 추진되어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새 공동체의 틀을 구축하는 일에까지 동아일보가 나서주기를 기대합니다.
〈정리〓김순덕기자〉
◇참석자
金泰吉(김태길·서울대명예교수)
金學俊(김학준·인천대총장)
張裳(장 상·이화여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