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政爭)을 멈추고 나라를 구하라」. 12일 발표한 대학총장들의 시국성명 요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과 반응은 한마디로 「제 논에 물대기 식」(我田引水·아전인수)이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대학총장들의 시국성명은 「숭고한 애국정신의 표출」(신한국당), 「최고지성들의 고언(苦言)」(국민회의), 「시국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慧眼)」(자민련)이라고 최고의 수사(修辭)를 동원해 추켜세웠다. 하지만 해석은 당리 당략에 따라 서로 달랐다.
신한국당의 金榮百(김영백)부대변인은 13일 『총장들이 정치권에 요구한 개혁의 충고는 여야가 정쟁을 중단하고 고비용 부패정치의 구조를 타파함으로써 혼란에 빠진 민심을 수습하라는 뜻』이라고 논평했다.
김부대변인은 이어 『「나는 깨끗하고 너는 더럽다」는 식의 삼척동자까지도 코웃음치는 언행을 버리고 진실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정치의 참도리를 회복하자』고 촉구했다. 요컨대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식」의 공격은 그만두라는 충고로 해석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그 정반대였다.
국민회의의 朴洪燁(박홍엽)부대변인은 즉각 반박논평을 내고 『대학총장들의 고언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고백하고 사과하라는 뜻』이라고 못박았다. 고백과 사과의 내용은 한보비리의 「몸체」와 92년 대선자금, 그리고 金賢哲(김현철)씨의 국정농단 등 3대 의혹이라고 지적했다. 온 국민이 경제살리기에 동참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3대 의혹을 포함한 정국불안요인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자민련의 沈良燮(심양섭)부대변인도 『「정쟁을 그만하고 나라를 살리자」는 총장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지만 한보사건과 김현철씨 비리, 대선자금 문제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매듭지어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정쟁으로 매도돼서는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회의 박부대변인의 말처럼 최고지성들이 시국성명까지 발표할 때는 예외없이 국가가 총체적 위기에 처했을 때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권은 대학총장들의 시국성명마저 자기 당에 대한 지지성명 정도로 치부했다.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