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차남 賢哲(현철)씨는 15대 총선에 출마, 정계에 공식 입문한 뒤 정치경험을 쌓아 15년 뒤 대권에 도전한다는 「15년 플랜」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철씨는 이 과정에서 全斗煥(전두환) 전 대통령의 맏아들 在國(재국)씨와 盧泰愚(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載憲(재헌)씨 등과 접촉, 전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모두 총선에 출마하는 구도를 만들려 했으나 재헌씨만 이에 동의하고 자신은 주위의 만류로 좌절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
현철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폭로한 비뇨기과전문의 朴慶植(박경식·44)씨 등은 『현철씨는 원래 정치에 뜻이 많았다』며 『현철씨 주위에서도 「베일 뒤에서 온갖 의혹에 시달리는 것보다 떳떳이 정치무대에 나서 뜻을 펼치는 게 낫다」고 조언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와 관련, 최근 『15대 총선때 현철씨는 부산 해운대―기장갑에서 당시 李基澤(이기택)민주당 상임고문과 정면대결을 벌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현철씨가 거제도나 부산의 평범한 선거구를 마다한 채 굳이 정계 거물인 이기택씨와 「승부」를 벌이려 했던 것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손쉽게 정치계에 입문한다」는 여론의 비난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란 게 박씨의 설명.
현철씨는 자신의 출마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에 진학하려고 출국하는 재헌씨를 만나 신한국당 공천을 약속, 재헌씨가 한 학기만에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하도록 종용한 사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철씨는 그러나 6.27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뒤 4.11총선 결과에 큰 부담을 느꼈던 김대통령이 『내 임기가 끝난 뒤에나 나가라』고 만류해 뜻을 꺾었다는 것이 중론.
당시 현철씨와 수시로 접촉, 조언했던 박씨는 『김대통령의 반대로 총선 출마 자체가 불가능해지면서 「국회의원→부산시장→서울시장→대권도전」의 플랜이 깨져 낙담하던 현철씨에게 「부산시장 2회→서울시장→대권도전」이란 새로운 방향을 제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현철씨는 김대통령이 퇴임후 전직 대통령들처럼 곤란을 겪는 것을 막고 자신의 정치행보에도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특정 대선후보를 집중지원하는 등 여권내 대선구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고 박씨는 주장했다.
국회공보비서관 출신 K씨(41)는 『당시 이러한 일련의 계획을 「小山(소산)의 15년 플랜」이라고 불렀다』면서 『김대통령 임기내 정치입문이 불가능해지자 현철씨는 관료집단에 무리하게 자기사람을 많이 심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이와 관련, 『주위에서 현철씨에게 「정계에 공식 입문하라」고 권유한 이유는 「대통령의 아들」이 아닌 「공인」으로서 실력을 인정받으라는 뜻이었다』면서 『주위의 조언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위치를 망각해 오늘의 사태를 자초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부형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