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盧씨 공판 판결문 요지]정승화 체포의 불법성

  • 입력 1997년 4월 17일 20시 45분


▼ 12.12 군사반란 부분 ▼ 1.피고인 황영시 등 변호인들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의 불법성 (1)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체포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의 직무상 행위로서 적법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내세운 증거에 의하여 1979년12월12일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인사처장 겸 계엄사령부 소속 합동수사본부 조정통제국장이던 피고인 허삼수가 국군보안사령부 사령관 겸 위 합동수사본부 본부장이던 피고인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위 합동수사본부 수사 제2국장 우경윤 등과 함께 대통령의 재가 없이 같은 날 18시50분경 무장한 제33헌병대 병력을 육군참모총장 공관 주변에 배치하고 같은 날 19시10분경 위 공관으로 들어가서 총으로 위협하는 가운데 육군참모총장 육군대장 정승화를 강제로 끌고 나와 같은 날 19시30분경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연행한 사실, 위 피고인들이 정승화 총장을 체포할 당시 그에 대한 강제수사가 필요하지도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체포 목적이 그의 범죄를 수사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군의 지휘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것을 지지 내지 동조하는 세력을 규합 확산하고 그에 대한 반대세력을 약화 동요시키기 위한 데에 있었던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위와 같은 정승화 총장의 강제연행행위는 위법한 체포행위라고 판단하였는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간다. 더욱이 위 체포 당시 시행되고 있던 군법회의법에 의하면 군인인 피의자를 구속할 경우에는 검찰관이 사전에 관할관의 구속영장을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1987년12월4일 법률 제3993호 군사법원법으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제237조 제1항) 긴급을 요하여 관할관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을 수 없는 때에 군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구속하는 경우에는 미리 검찰관의 지휘를 받아야 하며 다만 특히 급속을 요하여 미리 지휘를 받을 수 없는 사유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즉시 검찰관의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었는 바(1981년4월17일 법률 제3444호로 개정되기 전의 제242조 제1항 제2항) 당시 범죄수사를 목적으로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는 경우에는 현행범이거나 긴급구속의 필요가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전에 검찰관이 관할관(육군참모총장을 지휘 감독할 권한이 있는 국방부장관)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승화총장의 강제연행행위는 법률에 규정된 체포절차를 밟지 아니한 것으로서 위법함을 면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2) 대통령의 재가에 의하여 정승화 총장의 체포행위 등이 정당화되었다는 주장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피고인 전두환이 1979년12월12일 18시20분경 국무총리 공관에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의 체포에 대한 재가를 요청하였을 때 대통령이 묵시적으로라도 이를 승낙하였다고 볼 수 있는 자료가 없고 오히려 이를 거절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이 1979년12월13일 05시10분경 정승화 총장의 체포를 재가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승화 총장이 체포되고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인들이 동원한 병력에 의하여 육군본부와 국방부가 점령되고 육군참모차장 육군중장 윤성민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육군소장 장태완 등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을 이루면서 피고인들의 반란을 저지 또는 진압하려고 한 장성들이 제압된 후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이는 사후 승낙에 불과하며 사후 승낙에 불과한 위 재가로 인하여 이미 성립한 피고인들의 기왕의 반란행위에 해당하는 정승화 총장의 체포행위나 병력동원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므로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3) 정승화 총장의 체포행위가 반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주장 군형법상 반란죄는 다수의 군인이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국권에 반항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국권에는 군의 통수권 및 지휘권도 포함된다고 할 것인 바 피고인들이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의 체포에 대한 재가를 요청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 없이 적법한 체포절차도 밟지 아니하고 정승화 총장을 체포한 행위는 정승화 총장 개인에 대한 불법체포행위라는 의미를 넘어 대통령의 군통수권 및 육군참모총장의 군지휘권에 반항한 행위라고 할 것이며 원심이 적법히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들이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위와 같은 행위를 한 이상 이는 반란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나.대통령을 강압하지 아니하였다는 주장 원심은 피고인 전두환이 1979년12월12일 20시20분경 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육군준장 정동호,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 육군대령 고명승에게 지시하여 그들로 하여금 대통령의 승인이나 대통령 비서실과의 협의 없이 청와대 경비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제55경비대대 병력을 이끌고 당시 대통령이 사용하고 있던 국무총리 공관으로 출동하여 같은 날 20시40분경 위 공관의 경비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대통령 특별경호대장 육군중령 구정길과 특별경호대원들의 무장을 해제시킨 후 그곳 막사에 억류하고, 위 제55경비대대 병력으로 위 공관을 장악하고 그곳에 대한 출입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위 공관을 점거 포위하게 한 사실, 이어서 피고인 전두환이 당시의 국방부 군수차관보 육군중장 피고인 유학성, 제1군단장 육군중장 피고인 황영시, 수도군단장 육군중장 피고인 차규헌 및 당시의 제71훈련단장 육군준장 백운택과 제1공수여단장 육군준장 박희도 등과 함께 같은 날 21시30분경 국무총리 공관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 조사에 대한 재가를 재차 요구하면서 대통령을 강압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이는 대통령의 군통수권에 반항하는 행위로서 반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는 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다. 그리고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사실과 기록에 의하면 대통령이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사건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아 이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위 정동호 등이 국무총리 공관을 점거 포위한 가운데 위 피고인 등 수도권의 군지휘관 등이 늦은 저녁시간에 갑자기 집단으로 대통령을 방문하여 1시간이 넘도록 머물면서 정승화 총장의 체포에 대한 재가를 거듭 요구하였음을 알 수 있는 바, 이러한 행위는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대통령에 대한 강압이라고 보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이와 반대되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 병력동원의 불법성 (1) 피고인들의 병력동원이 적법한 행위라는 주장 피고인들이 정승화 총장을 체포한 행위가 반란에 해당함은 앞서 본 바와 같고, 한편 정승화 총장이 반란집단에 의하여 체포됨으로써 사고를 당하였으므로, 당시 시행되고 있던 국군조직법에 의하여 윤성민 차장이 정승화 총장을 대행하여 육군을 지휘 감독할 권한이 있었고 따라서 위 윤성민 차장이 앞서 본 바와 같이 정승화 총장의 석방 명령에 불응하는 피고인들의 공격에 대비하거나 피고인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부대의 출동준비 또는 출동을 명령한 것은 정당한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시 시행되고 있던 수도경비사령부설치령에 의하면, 수도경비사령부는 한강 이북의 수도권 일원과 특정경비구역(국가원수가 위치하는 지역으로서 경호를 위하여 필요한 상당한 범위의 지역)의 안전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육군에 설치된 부대로서 국가원수의 경호 및 특정경비구역의 경비, 긴급사태에 있어서의 수도방위 등을 그 임무로 하게 되어 있는 바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들에 대하여 공격을 준비한 행위는 반란집단인 피고인들로부터 국가원수를 경호하고 특정경비구역을 경비하며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반란행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한 행위라고 할 것이므로, 이는 수도경비사령부의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서 정당한 직무의 집행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2) 당시 육군의 정식지휘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어 윤성민 차장 등의 육군에 대한 명령과 지휘가 위법하거나 무효라는 주장 원심은 국방부장관 노재현이 1979년12월12일 21시30분경 육군본부에 도착하여 윤성민 차장 등으로부터 피고인들의 반란행위와 그 동안의 경과를 보고 받은 뒤 자체 방위능력을 갖지 못한 육군본부로부터 방위능력이 있는 수도경비사령부로 육군지휘부를 옮기도록 윤성민 차장에게 명령하고, 자신은 김종환 합참의장 등과 함께 감청방지장치가 설치된 한미연합사 사령부로 가서 그곳에서 윤성민 차장 등과 연락을 취하면서 22시30분경에는 대통령과 전화통화까지 한 사실, 윤성민 차장 등 육군의 수뇌부는 그 무렵 육군 지휘부를 수도경비사령부로 옮긴 뒤 국방부장관 및 예하부대와 통신축선을 유지하면서 피고인들의 반란에 대처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당시 육군의 정식 지휘체계가 붕괴되어 윤성민 차장 등의 명령과 지휘가 위법하다거나 무효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는 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하다. 라. 지휘부를 설치 운영하지 아니하였다는 주장 원심은 피고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그들을 지지하는 피고인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최세창 등을 역시 그들을 지지하는 피고인 장세동의 사무실인 제30경비단 단장실에 집결시켜 유사시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구성하기로 결의하고, 피고인 노태우와 전두환의 연락에 따라 피고인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최세창 장세동 등이 1979년12월12일 18시경 부터 같은 날 19시경 사이에 제30경비단 단장실에 집결하여 지휘부로 기능하고, 한편 피고인 전두환은 피고인 허화평으로 하여금 당시의 보안사령부 정보처장 권정달, 보안처장 정도영 등과 함께 보안사 상황실을 거점으로 하여 각급부대 지휘관의 전화를 도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대동향과 병력이동상황을 파악하여 수시로 위 지휘부에 보고하게 한 사실을 인정하였는 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 사실인정은 정당하다. 마.반란의 모의 등 (1)반란의 모의 또는 공동실행의 의사가 없었다는 주장 원심은 피고인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하여 피고인 황영시 차규헌 최세창 장세동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은 군의 지휘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 총장의 체포, 그 후의 대통령에 대한 강압 병력동원 등의 반란행위에 대하여 개별적 또는 순차적으로 모의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적어도 정승화 총장의 체포를 알고 난 뒤 이를 용인하고 지지하면서 집단을 이루어 병력을 동원하거나 이에 가담한 이상, 공모하여 반란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고, 피고인 박종규 신윤희는 위 병력동원행위가 반란행위임을 인식하고 이를 공동으로 실행할 의사를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는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간다. 2.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다.피고인 박준병의 반란의 점에 대하여 원심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이 제20사단을 적극적으로 장악하여 그 동원을 해보려고 시도하여 본 일이 없고, 다만 공동피고인 전두환 등 반란집단을 위하여 제20사단이 동원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하였음에 불과한 점, 피고인 박준병이 적어도 불암산에 주둔하고 있는 제20사단 제62연대는 언제라도 반란집단을 위하여 동원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원하지 아니한 점, 제20사단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피고인 박준병의 조치는 육군본부의 제20사단에 대한 출동금지지시와 오히려 일치한 점, 피고인 박준병이 제30경비단에 남아 있으면서도 반란집단을 위하여 뚜렷하게 기여한 바가 없었으며, 다른 피고인들과 일치된 행동을 하지 아니한 점 등이 드러나므로, 피고인 박준병이 12월12일 저녁에 제30경비단의 모임에 참석하고 부대에 복귀하지 아니한 채 참모들에게 부대를 잘 장악하고 자신의 육성지시 없이는 부대출동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였다고 하여, 이를 가지고 바로 피고인 박준병이 제30경비단에서 반란지휘부에 참여하고 반란의 범의를 가지고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제20사단 부대장악을 저지 방해함으로써 반란에 가담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달리 이 사건에서 채용된 증거를 종합하여도 피고인 박준병이 반란지휘부의 일원이 되어 반란에 가담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므로, 피고인 박준병에 대한 공소사실은 그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형사재판에서의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이러한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93년 3월 23일 선고 92도3327 판결, 1995년 12월12일 선고 94도2253 판결, 1996년 3월8일 선고 95도3081 판결 등 각 참조). 위와 같은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볼 때, 원심이 제5공화국전사의 증거능력을 배척한 조처나, 피고인 박준병이 반란의 범의를 가지고 이 사건 반란에 가담하였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한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간다. 이 점에 대하여는 대법관 천경송, 대법관 지창권, 대법관 이용훈, 대법관 이임수, 대법관 송진훈의 반대의견이 있다(제7장 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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