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은 하나도 밝히지 못한 채 불신만 가중시킨 청문회.
88년 5공청문회에 이어 9년만에 TV앞으로 전국민의 귀와 눈을 불러 모은 7일의 한보청문회는 국민들에게 불신감과 혐오감만 불러 일으켰다.
시민들은 오전 청문회의 대부분이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의 답변보다는 의원들의 훈계성 질문이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정씨가 『기억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는 말로 일관하자 오후부터는 아예 TV를 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한 시민은 『차라리 4지선다형으로 질문서를 만들어 정씨에게 답변토록 하는 것이 낫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서울역 대합실에는 오전9시부터 4대의 대형 TV앞에 시민들이 빽빽히 둘러서 청문회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으나 정씨가 회피성 답변으로 일관하자 『때려치워』 『그럴 줄 알았어』하며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청문회 생방송보다 미국프로농구를 중계하는 케이블TV앞에 더 많은 시민들이 몰려 들었다.
사무실에서 청문회를 지켜본 회사원 柳承鉉(유승현·27)씨는 『정씨가 재판에 계류중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거부하는 데 대해 아무런 제지도 하지 못하는 국회청문회를 과연 계속해야 하느냐』며 청문회 무용론을 제기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李基鐸(이기탁)교수는 『특위위원들이 풍문을 토대로 한 질문으로 일관해 실망했다』면서 『여야의원들이 정씨를 앞에 두고 자신들끼리 서로 비방하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도 한심스러웠다』고 말했다.
대학생 洪銀(홍은·21)씨는 『한보사태가 터진지 몇달이 됐는데 국회의원들이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청문회 준비보다는 정치적 거래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보본사에는 비서실 직원 등 일부만 청문회를 지켜보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TV를 꺼놓은 채 애써 업무에 열중했으며 충남 당진의 한보철강당진제철소 직원들은 별 동요없이 조업에 임하는 모습.
이에 반해 충남도청과 당진군청 공무원들은 사무실마다 TV를 켠 채 정씨 증언에 촉각을 곤두세웠는데 충남도청의 한 관계자는 『당진공장매립과정 등 충남도의 유관업무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돼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
〈이현두·윤종구·신치영·박정훈·대전〓이기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