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떡값」/鄭씨 속셈]범죄 안될 부분만 골라 발언

  • 입력 1997년 2월 3일 20시 28분


한보특혜대출의혹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궤도에 들어섰다. 鄭泰守(정태수)총회장이 2일 『평소 친분이 있는 여야 국회의원 10여명에게 명절이나 선거 때마다 인사치레로 1백만∼5백만원씩을 수시로 건네주었다』고 진술하는 등 입을 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가 그 실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셈이다. 정총회장은 구속 3일만인 2일 밤 처음으로 서울구치소에서 지낸 뒤 3일 오전 다시 검찰에 소환돼서도 어느 정도의 진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崔炳國(최병국)대검중수부장도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공개할 수는 없다』는 말로 정총회장이 뭔가 진술을 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최중수부장의 말은 정총회장이 설령 정치권이나 금융계 인사에게 대출과 관련해 돈을 주었다는 진술을 했더라도 주변정황 등 구체적으로 금전수수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정총회장의 진술내용을 공개하기 곤란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정총회장이 현재까지 진술한 내용은 대략 금융권과 정치권 인사들에게 광범위한 로비를 한 사실을 시인한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정총회장은 여야국회의원 10여명에게 「떡값성」 돈봉투를 돌린 사실과 정치인의 이름 등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으로 알려졌으나 검찰은 이 부분을 수사대상으로 삼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최중수부장은 『정총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명백하더라도 대출과 관련성이 없다면 아무런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그는 또 『검찰 수사가 농담같은 진술을 받아내는 장난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며 정총회장의 진술에 대해 아직까지는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또다른 검찰 고위관계자는 『정총회장이 아무런 범죄도 되지 않으면서도 정치권에는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진술을 먼저 한 것은 수사의 초점을 흐리려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검찰은 정총회장이 정치권 인사들에게 떡값제공 진술을 한 직후 매우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우 긴박하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한 것. 그러나 검찰수뇌부와 수사실무자들의 연석회의에서 정총회장의 이같은 진술은 수사가치가 없다고 정리하면서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 검찰은 어쨌든 정총회장이 입을 열기 시작함으로써 진술내용의 진위여부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등 사건의 핵심에 조금씩 접근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주변조사가 끝나는대로 곧바로 전현직 시중은행장들과 정치권인사들을 차례로 소환, 일부인사들은 형사처벌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본격적인 형사처벌 단계까지 가기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까지의 정총회장 진술만으로는 구체적인 범죄혐의를 입증하는데 광범위한 추가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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