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종교/영생교 실종자 인적사항]

  • 입력 1996년 12월 11일 20시 17분


「부천〓田承勳기자」 영생교 피해자 가족 대책협의회가 밝힌 실종자는 모두 17명. 이중 소문종씨의 시체는 지난해 경기 용인시 용인읍 쓰레기매립장에서 발견됐으며 현재까지 시체조차 확인되지 않은 사람은 모두 16명이다. 다음은 위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은 실종자(괄호안은 실종당시 나이). △안경렬(36)〓홍업비 조희성과 함께 밀실생활을 하며 수련생활을 한 사이. 조희성의 비리를 많이 알고 있고 그의 권위에 도전, 독립해 재단을 설립하려고 해 제거된 것으로 추정. 87년 2월7일 오후 2시경 코란도 지프를 운전하고 가다 행방불명돼 2개월후 대청댐에서 지프만 발견됨. △김철순(54)〓영생교 신도로 안경렬 실종 당시 목격자. △이영구(53)〓승리재단의 총무과에 근무하던 중 89년 따로 독립해 광주 「3천년성」이라는 사이비종교 교주 이현석과 내통한다는 이유로 지하실에 2개월간 감금됨. 영생교를 빠져나온 후 90년 부산 개금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중 영생교 간부로부터 만나자는 전화연락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 △양해금(60)〓영생교 신도 1번. 90년초 조희성과 알력이 생겨 인천 주안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따로 예배를 보자 살해위협 당함. 91년1월 광주 3천년성 교주를 만나러 간다고 나간 후 행방불명. △전영광(50)〓영생교 승리신문 편집국장. 91년말 탁명환이 운영하는 국제종교문제연구소에출입하면서영생교의비리를 폭로하려다 92년 2월 승리신문 후임 편집국장 김정웅을 만나러 나간 후 실종. △박차선(62·여)〓영생교 구역장을 역임. 양해금이 인천에서 독립해 예배를 볼 때 신도들을 인천으로 빼돌리는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시흥시 소재 은혜원에서 감금당해 구타당한 뒤 행방불명. △김종웅(45)〓영생교 기업인 ㈜근화실업의 전신인 삼일실업 설립자. 조희성교주와 의견충돌이 잦아 90년 6월경 안성저수지로 낚시하러 갔다가 행방불명된 후 타고다니던 승합차만 한강둔치에서 발견됨. △지성룡(35)〓교주가 지목한 사람을 살해하는데 적극 나선 행동대장. 89년 신진규 교수 납치감금사건, 소문종 살해사건의 주동자였으나 「교주의 비리 폭로」를 준비하던 중 90년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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