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동포 「사기」에 운다/피해실태 현지취재]

  • 입력 1996년 12월 1일 19시 58분


『나도 좋고 가족도 좋고 무조건 한국으로만 나가게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사기꾼에게 속아 2만원(元·한화 약 2백만원)을 빚졌다가 지난 3월 빚쟁이로부터 식칼로 얼굴을 난자당해 현재 연길시내 병원에 입원중인 蔡在律(채재율·37·연변자치주 훈춘시 마천자향)씨는 여전히 한국에 갈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칼부림까지 당했지만 한국에 가지 않고는 빚을 갚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선족동포들의 한국행 염원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강하다. 개혁개방이후 불어닥친 금전만능풍조하에서 한국행이야말로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해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일가친척 11명과 함께 한국에 갔다온 연길의 지모씨(32)는 2년간 대전의 전구공장에서 일하다 귀국했으나 지난 24일 또다시 한국에 갔다. 『여기선 한달 봉급이 5백원도 안되지만 한국에 가서 2년만 일하면 수속비용 5만∼6만원을 제해도 10만원이 넘는 목돈을 벌 수 있지 않느냐』는게 남은 가족들의 말이다. 이 돈이면 30평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한 밑천 잡아보려는 사람은 많은데 한국꿈을 실현할 통로가 비좁다는데 있다. 현재 조선족이 정상적으로 한국에서 취업, 돈을 벌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은 산업연수형식의 노무송출이나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비좁다. 금년에 중국내 노무송출회사가 한국중소기협중앙회산하 산업기술연수협력단을 통해 한국으로 파견할 산업연수생은 모두 4천5백명. 사기피해자규모에 비추어보면 턱없이 못미치는 숫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노무송출회사가 난립해 있고 한국의 관련정책에 일관성이 결여돼 구조적으로 사기사건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피해자협회 孔相日(공상일·41)비서장은 『95년 6월 중소기협중앙회측이 중국의 송출회사가 난립돼 부작용이 많다며 연변 장춘 천진 등 7개지역에 각 1개회사씩만 연수생송출권을 준 후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이전에 한국관련기관으로부터수십명혹은수백명의 송출권을 확보했다며 접근한 한국인들을 믿은 중국송출회사나 조선족들이 너도나도 희망자를 모집, 돈을 건네주었다가 떼인 것』이라며 한국정부의 정책변경이 대량 사기사태를 초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상적인 통로가 막히자 위장결혼 밀입국 가짜초청장 등 갖가지 불법수단이 동원됐다. 韓中(한중)국제결혼의 경우 94년 2천여건이었으나 95년에 7천7백여건으로 급증한데 이어 금년엔 1만건에 달할 전망이다. 이들중 대부분이 위장결혼이라는 게 한국영사관의 판단이다. 밀입국과 가짜초청장도 성행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해안부근에서 검거된 조선족밀입국자만 4백41명이고 중국측에 잡힌 경우는 2천명에 달한다. 가짜초청장이나 가짜여권 가짜비자발급인증서도 지난해 8백50여건이나 적발됐다. 합법 불법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한국에 다녀온 조선족동포는 약 30만명으로 추산된다. 2백만 조선족인구의 15%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들 「한국체험자」들이 조선족사회에 끼친 영향은 매우 심대하다는 게 현지인들의 진단이다. 연변의 한 현직기자는 『한국에서 벌어온 돈으로 소비풍조가 크게 번졌다. 볼링장 다방 등이 우후죽순처럼 늘었고 옷차림과 가구가 한국풍을 좇아 화려해졌다』고 말했다. 현대적인 기업경영기법을 배워오는 등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으나 그보다는 소비풍조의 만연과 같은 부정적 요소가 훨씬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코리안 드림이 조선족사회를 휩쓸면서 농촌마을마다 장가못간 홀아비들이 넘쳐난다는 현지언론의 보도는 이제 더이상 신기한 얘깃거리가 못된다. 연변자치주 용정(龍井)의 농촌마을에서 만난 최모씨는 『젊은 처녀들은 위장결혼으로 빠져나가고 할머니는 친척방문으로, 부녀자들은 밀입국으로 너도나도 한국으로 가버려 지금 농촌에는 3대(代)홀아비들만 남아 있다』고 개탄했다. 최근의 조선족상대 사기사건이 한국의 대북정책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기피해자 金東賢(김동현·61)씨는 『이런 식으로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 감정의 벽을 쌓는다면 앞으로 한국의 북한주민에 대한 정책도 어렵게 될 것이다. 한국인이 동족을 상대로 어마어마한 사기를 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북한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게 되겠는가』라며 『이번 사건의 진정한 피해자는 한국』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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