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천(天)따 지(地)를 배웠으면 해(日)달(月)산(山)시내(川) 등도 배워야 하
는 데 왜 곧바로 검을 현(玄)누르 황(黃) 등 색에 대한 글자를 가르치는가. 쓸모없
는 단순한 문자지식은 무가치하기 때문에 「천자문」은 태워 없애 버려야 한다』
조선후기에 연암 朴趾源이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담총외기」(談叢外記)중 한
문장이다.
「서당에서 천자문 외우는 학동」의 모습을 전형적인 조선시대 교육현장으로 생각
했던 사람들은 오는 30일부터 서울대 규장각에서 열리는 「규장각자료로 보는 조선
시대의 교육」이란 제목의 특별전시회에 가면 너무도 다양한 조선시대의 교육내용과
이념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세상이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은 그 지아비들의 밝고
어두움에만 매인 것이 아니라, 부인의 어질지 못함에 있는 것이다. 매일 성인에게
기약하여 밝은 거울이 되도록 조심하여라』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왕후(昭惠王后)가 1475년에 편집한 「어제내훈」(御製內訓)
의 서문을 보면 가부장중심의 조선시대에도 여성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됐음을 알 수
있다.
양반중심의 사회였지만 평민들에 대한 교육의 비중도 결코 작지 않았다.
최상위 법전인 「경국대전」에 『「삼강행실」(三綱行實)을한글로번역해 널리 가
르치라』는 내용이 규정돼 있을 정도였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에는 평민들에 대한
유교교육이 더욱 절실해져 광해군때는 역대 삼강행실 관계 서적을 집대성한 「동국
신속삼강행실」(東國新續三綱行實)을 간행, 보급하기도 했다.
1880년 尹最植이 지은 「일용지결(日用指訣)」을 보면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하루
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알 수 있다.
『여름철엔 오전 2시에 일어나 「앎과 느낌을 개발하는 공부」를 하고 오후 2시부
터는 독서 사색 여가를 즐기거나 실용기술을 익히고 오후 8시에는 자제를 교육한뒤
우주와 인생 자기행동에 대한 묵상을 하고 오후 10시에 잠자리에 든다』
TV드라마에선 마냥 한가해 보였던 선비들이 하루 4시간 수면에 10시간이 넘는 독
서와 자기정진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숙종춘방일기」(肅宗春坊日記) 「경종보양청일기」(景宗輔養廳日記) 등을 통해
선 「나랏님」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가 상세히 나타나 있다.
서울대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회에 대해 규장각 관장 李相澤교수
는 『조선시대의 다양한 교육정책이나 내용을 좀더 진지하게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 교육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夫亨權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