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尹 당연히 만나고 대화할 것”…대통령실은 즉답 피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2일 16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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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오전 당선인들과 함께 현충탑 참배를 위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하고 있다. 2024.4.12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년이 다 되도록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나지 않아 온 것은 이 대표가 대장동 의혹에 연루된 수사 대상이자 형사재판의 피고인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 탓이다. 이 대표를 향한 수사가 이뤄지던 2022년 하반기 윤 대통령은 한 참모에게 이 대표가 구속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지 않느냐”는 조언에도 윤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았다. 만남이 검찰에 불필요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러나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진통 끝에 국회에서 2차례 기각됐고, 이번 총선 결과는 거야의 압승으로 끝났다. ‘포스트 이재명’ 시대를 계기로 대야 소통에 시동을 걸려던 윤 대통령의 시나리오는 무산됐다. 이제 192석을 확보한 ‘반윤(반윤석열) 거야’를 상대로 국정 3년을 이끌어야 하는 윤 대통령을 향해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으로 소통과 협치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면서 대통령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 李 “당연히尹 만나고 대화할 것”

이 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과의 회담 가능성에 대해 “당연히 만나고 당연히 대화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못 한 게 아쉬울 뿐”이라고 영수회담을 촉구했다. “당연히 이 나라 국정을 책임지고 계신 윤 대통령께서도 야당과의 협조, 협력이 필요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 대표는 2022년 8월 당 대표 취임 후 8차례 영수회담을 제의해 왔다.

민주당 당선인들도 “영수회담이 됐든 뭐가 됐든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출발점”(민형배), “첫 번째로 단행돼야 하는 것은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고민정) 등 만남을 압박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통화에서 “이 대표가 먼저 앞장서서 윤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여당을 향해 대화와 통합을 위해 손을 내밀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잇따른 회담 요구는 총선에서 압승한 이 대표를 필두로 “거야의 세 과시”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치 회복이라는 명분을 야당 대표가 먼저 던져 국정 운영 협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갖고 오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대표가 차기 야권 대권주자로 확실하게 올라선 만큼, 윤 대통령과의 대등한 이미지를 강조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못 박으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 대통령실 “아직 생각 안 하고 있다”지만

반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회담 가능성에 대해 “아직은 대통령이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즉답을 피했다. 국무총리와 비서실장 등 후임 인선, 개각, 대통령실 개편 등 총선 패배에 따른 숙제가 산더미처럼 밀려 윤 대통령이 숙고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즉답을 내놓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간 대통령실은 야당 대표의 카운터파트는 여당 대표라는 인식도 있었다. 윤 대통령이 1월 KBS 대담 때도 “대통령실은 여당과 별개이기 때문에 영수회담은 없어진 지 오래” “정당 지도부와 만날 용의는 있지만 여당 지도부를 무시할 수 있어 곤란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총선 참패로 임기 3년을 여소야대 국면에서 이끌게 된 만큼 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김재섭 서울 도봉갑 당선인은 영수회담에 대해 “선택이 아닌 당위의 문제”라며 “당연히 만나야 하고, 만나서 풀어야 할 문제도 너무 많다”고 말했다. 경기 포천·가평 김용태 당선인도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만나 이야기 하는 것을 부자연스럽다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만나 민생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라고 했다. 영수회담 제안과 무산이 반복됨에 따른 경직성이 여야 소통에도 악재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정 과제 이행 지연, 민생 법안 표류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의 만남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한 조언 그룹 인사는 “대선 직후 윤 대통령에게 2024년 총선 전까지 대통령이라는 생각보다는 낮은 자세로 임하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며 “이제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먼저 만나자고 해도 부족한 상황이 됐다”고 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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