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와 혐오 부추기는 ‘정치 실종’이 부른 테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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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 피습]
‘극한 충돌’ 정치문화
생각 다르다고 “궤멸” “타도”… 방치땐 집단행동 확산될 수도
“극단적 팬덤 정치문화 바로잡고… 특정집단 공격 발언 자제를” 지적

경찰, 李 습격 피의자 제압 2일 오전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흉기로 습격한 
김모 씨(가운데)가 범행 직후 한 손에 흉기를 든 채 경찰에 제압되고 있다. 김 씨는 이날 이 대표 지지자 행세를 하며 ‘내가 
이재명’이라고 적힌 종이 왕관을 머리에 쓰고 이 대표에게 접근해 범행을 저질렀다. 유튜브 채널 ‘바른소리TV’ 화면 캡처
경찰, 李 습격 피의자 제압 2일 오전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흉기로 습격한 김모 씨(가운데)가 범행 직후 한 손에 흉기를 든 채 경찰에 제압되고 있다. 김 씨는 이날 이 대표 지지자 행세를 하며 ‘내가 이재명’이라고 적힌 종이 왕관을 머리에 쓰고 이 대표에게 접근해 범행을 저질렀다. 유튜브 채널 ‘바른소리TV’ 화면 캡처
“서로를 향한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극단적 정치 문화가 부른 ‘정치 테러’다.”

2일 발생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치의 실종에 따른 폭력성이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라며 이같이 진단했다. 여야 간 대화나 협치보다는 극한 충돌과 대치가 장기화되면서 폭력에 기대는 정치문화에 익숙해졌다는 것.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치폭력을 방치하면 2021년 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 및 2022년 7월 일본 아베 신조 전 총리 피살 사건 등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더 극단적인 공격 형태로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야 정치인들도 “정치권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로를 적대시하는 문화를 바로잡고, 특정 집단을 향한 공격적 발언도 자제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 “대화와 타협보다 폭력에 기대”


정치 전문가들은 그동안 누적된 극단적 혐오 정치가 폭력적 행위로 표출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거대 양당 간, 심지어 같은 당내에서도 서로 생각이 다르면 적대시하고, 척결의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 속에 자연스레 폭력이 용인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정치는 결국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뤄나가는 과정인데, 자기 생각과 조금만 다르면 상대를 경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궤멸시키거나 타도하는 증오 정치가 이어진 탓”이라며 “지지자들도 극단적 대결 정치에 영향을 받아 자신들도 폭력성에 기대도 되는 것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상대방을 악마화시키는 정치 구조가 반복되면서, 상대방을 협치나 공생의 대상이 아닌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이어지는 건, 폭력을 쓰지 않고는 내 의견을 제대로 표출하고 정치권에 전달해 수용시킬 수 없을 거란 불신 때문”이라고 했다. 상대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일종의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 민주주의)’ 상황이라는 것.

특히 전문가들은 아직까진 개인의 일탈 수준이지만, 이를 방치하면 특정 단체의 집단행동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실상 한국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 직전까지 간 것”이라며 “지지층이 내부에서 싸우다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하고, 그걸 집단행동으로 분출하면 미국 같은 일이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 “정치권, 적대적 발언 자제해야”


극단적인 정치테러 또는 폭력을 막으려면 근본적인 정치 문화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모두 여론에 승복하고, 서로를 향한 적대적 발언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요즘 정치는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결코 같이 갈 수 없는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짓는다”라며 “결국 정치력과 리더십의 부재가 문제인데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양 교수도 “대통령부터 특정 집단을 겨냥해 ‘청산’ ‘척결’ 등의 표현을 조심해야 하며, 야당도 정부여당에 대한 과도한 공격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극단적 팬덤 정치 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채 교수는 “정치권이 대화나 타협을 체질화하고 진영-팬덤 정치를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그래야 지지자들도 경각심을 가질 것”이라며 “정치인들이 극단적인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은 통화에서 “우리 정치가 너무 극한 대립으로 가다 보니 지지자들도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황우여 전 대표도 “정치인끼리 공적 대화를 할 때는 국민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원칙적으로 정치인은 유머나 해학, 은유 등을 활용해 표현을 완화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 연설과 대화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도 통화에서 “극단적 정치 혐오 현상을 만든 정치권 전체가 자성해야 한다”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조권형 기자 buz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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