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스크 1만명’ 北노동당 대회, 소름 돋는 반전[주성하의 北카페]

주성하 기자 입력 2021-04-11 12:00수정 2021-04-1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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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명의 노동당 세포비서 대회 참가자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평양체육관에 빼곡히 앉아 김정은의 연설을 받아적고 있다. 출처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북한’을 했구나.”

지난 6일부터 8일 사이 평양에서 열린 당 세포비서대회 사진을 보는 순간 든 생각입니다. 각 부문 당 세포비서, 도당과 도급 당 책임간부, 시·군 및 연합기업 당 책임비서, 당중앙위원회 해당 간부 등 1만 명이 회의장에 빼곡히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마스크를 쓴 사람이 없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방역에 몰두하는 가운데, 저렇게 1만 명을 마스크도 씌우지 않은 채 한 회의장에 모이게 할 나라는 단언컨대 북한밖에 없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북한 전역에서 몰려온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격리기간도 없이 2박3일간의 회의에 참가했습니다. 군부대처럼 폐쇄된 환경을 유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이해를 할지 몰라도 전국에서 모이면 이야기가 또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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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회의장에 김정은까지 2박3일간 앉아있었습니다. 이것은 북한에 코로나19가 퍼지지 않았다는 확실한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1년 동안 ‘북한에 코로나19가 퍼져 난리’라고 한국 언론에 심심치 않고 나왔던 기사들은 거짓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북한의 실정상 코로나19가 퍼졌다면 진단 키트도, 치료제도 거의 없어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었을 겁니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북한에는 코로나19가 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북한의 코로나19 방역 상황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정보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1만 명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회의를 하는 북한이 사실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코로나19 방역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엄격하다는 말보단 사실 잔인하다고 해야 맞습니다.

북한에선 “코로나19 방역지침 위반자는 군법으로 처벌하라”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지난해 2월부터 지침 위반자를 비밀리에 처형했습니다. 자가 격리기간에 목욕탕을 갔다거나, 격리된 사람을 만나러 갔다는 이유로 죽었습니다. 지난해 2월 중순부터 두 달 기간에만 무려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처형됐다고 대북소식통은 전해왔습니다. 이런 조치는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김정은까지 회의장에 간 것은 분명 코로나19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데, 한편으로 북한 전역은 이동과 모임이 금지되고 위반하면 처벌을 합니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코로나19 방역은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점이 이번 대회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

김정은은 2017년 9월 유엔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통과된 뒤부터 사회를 통제할 방법을 계속 연구해왔습니다. 수출이 막히면 외화를 벌수가 없고, 외화가 없으면 물가가 오르고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예측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특히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2019년 12월 22일을 기점으로 해외 근로자들까지 대다수 북한으로 송환되자 김정은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해 12월 말에 노동당 전원회의를 연 김정은은 회의 직전 정경택 국가보위상을 불러 보위성에 김정일 동상을 다시 세울 것을 지시하는 등 보위성에 대폭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이는 김원홍 보위상 처형으로 한동안 불신했던 보위성에 다시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였습니다. 보위성에 대한 재신임은 공포통치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내부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불안한 민심을 강압적으로 억누르는 것만이 김정은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걸 위해 보위성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재신임을 받은 보위성은 지난해 상반기에 간첩단 사건을 여러 개 터뜨려 내부에 공포분위기를 확신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습니다. 간첩단보다 더 확실한 북한 내부 군기를 잡을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간첩단 공개와 처형은 공포분위기만 만들지만, 코로나는 이동과 모임까지 차단해 사람들이 불평을 할 기회까지 빼앗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탄이 난 경제도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면 됐습니다. 방역으로 국경을 막다보니 물자가 들어오지 못해 물가가 오른다고 말입니다. 실제 김정은은 저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국경 폐쇄를 철저히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세포비서 대회를 통해 김정은의 내부 통치 방법이 다시 변할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 핑계도 이제 1년이 넘게 지나가니 사람들에게 잘 먹히지 않게 됐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마스크 없는 1만 명이 모인 세포비서 대회는 통치 방법이 바뀌는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렇게 한 자리에 모아놓고 3일이나 회의를 진행한 뒤 다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질 우려 때문에 모임을 갖지 말라고 하면 말이 먹히겠습니까.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8일 제6차 당 세포비서대회에서 결론과 폐회사를 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이 찾은 방법도 이번 회의에 답이 있습니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와의 투쟁, 부정부패와의 투쟁입니다. 또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북한에선 반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 부정부패를 했다는 이유로 처형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고난의 행군은 북한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을 의미합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장군님을 믿고 따르지 않고 불만을 늘어놓고 부정부패나 하는 인간들은 죽어도 된다는 통치 논리가 설파될 것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공개 총살이 이어지게 되면 주민들은 시장에서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불만을 이야기할 수가 없게 됩니다. 김정은부터 고난의 행군을 한다고 하는데, 경제난으로 불만을 가지면 반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1월 노동당 8차 대회를 시작으로 3개월 동안 숨차게 이어진 전국 단위 대회는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세포비서는 당원 5~30명 정도로 구성되는 당의 최말단 조직 책임자입니다. 당에선 이들보다 더 낮은 직급은 거의 없으니 김정은이 당의 기강을 잡는 일정은 거의 마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군부 초급 지휘관, 청소년 담당 교육기관 등을 불러 정신교육을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내부 군기를 잡는 와중에 북한이 대외적으로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더욱 높아집니다. 미국의 대북 정책도 조만간 윤곽을 드러내겠지만 당장 북한과의 화해무드로 갈 확률은 희박합니다. 미국과의 대화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면 북한이 선택할 길은 도발입니다. 내부의 투쟁과 함께 경제난의 원인을 미국에 전가하고 적들에게 핍박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주민의 시선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북한의 도발에서 안전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김정은이 언급한 고난의 행군은 투쟁을 의미합니다. 투쟁은 싸울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달 김여정은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해 “임기 말기에 들어선 남조선 정부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북한의 경제난으로 초래된 내부 불안이 한국의 안보 위기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해야 할 때입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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