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조직처럼 변하는 북한 통치방식[주성하의 北카페]

주성하 기자 입력 2021-03-14 12:00수정 2021-03-1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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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개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 도중 누군가를 가리키며 질책하고 있는 김정은. 동아일보 DB
어두컴컴한 아이스링크 한복판에 겁에 질린 2인자가 차렷 자세로 서서 “모두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신속히 처리하겠습니다”라며 울부짖는다.

그러나 스케이트를 타고 천천히 다가온 1인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퍽을 2인자의 몸통에 날린다. 고통에 주저앉으면서도 2인자는 “앞으로 절대 허투로 일하지 않겠다. 다신 실망시키지 않겠다. 한번만 기회를 주면 분발해 잘하겠다”며 빠르게 외친다. 그럼에도 1인자는 쓰러진 그의 몸을 스틱으로 사정없이 내려친다.

혹독하게 당하고 돌아온 2인자는 부하들을 모아 매운 짬뽕을 강제로 폭풍 흡입하게 하는 벌을 내리며 일처리를 제대로 못했다고 다그친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tvN의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이다. 문제는 이런 장면을 봐도 시청자들은 크게 놀라지 않는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조직 보스가 2인자나 중간 보스들을 흉기로 마구 때리며 화를 내는 장면은 우리가 지금까지 조폭 영화에서 수없이 보아온 장면이기 때문이다. 때리면 다행이고, 일을 잘 처리 못했다며 부하를 죽여서 다른 조직원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장면도 흔하다. 그렇게 보스의 분노 앞에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온 중간 보스들은 다시 아래 조직원들을 모아 놓고 폭력을 휘두르며 목숨 걸고 일을 하겠다는 충성맹세를 받아낸다. 이것이 조폭 조직이 돌아가는 생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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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북한이 시끄럽다. 평년의 이맘때라면 3월초에 시작되는 한미연합훈련을 성토하고 협박하는 성명이 발표되며 시끄러웠겠지만 올해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한미연합훈련 비난은 일절 없다. 대신 노동신문 등 북한 언론에는 내각과 경제 간부들의 자아비판 기고문이 잇따라 실리고 있다.

9일 노동신문에는 조용덕 내각 국장이 “경제 부문 간 유기적 연계와 협동이 원만히 보장되지 못했다”며 “유기적 연계와 협동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 책임은 우리 내각 일군(간부)들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본위주의를 철저히 타파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되는대로 사업하던 그릇된 일본새와 완전히 결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역시 지면에 등장한 최영일 순천지구청년탄광연합기업소 지배인은 “연간 굴진 계획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불 보듯 명백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김영철 북창화력발전연합기업소 지배인은 감속기를 교체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타박만 했다가 전력 생산에 차질을 빚은 자신의 사례를 들며 자아비판을 했다.

9일부터 노동신문에 처음 등장한 ‘지상연단’이라는 코너는 앞으로 간부들의 반성문을 계속 실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역사에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에 간부들의 자아반성문을 실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원래 북한 언론은 김 씨 일가의 우상화와 긍정적 인물을 내세워 본보기를 따라 배우기 운동을 펼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부정적 내용은 절대 실리지 않던 신문이 간부들의 자아비판까지 게재하며 일을 똑바로 하라고 독려하는 것은 올해 김정은의 행보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김정은은 1월 초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개회사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 기간이 지난해까지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하였다”며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이어 지난달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당 경제 담당 경제 간부들을 향해 삿대질하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소리를 치는 사진이 공개됐다. 노동신문이 ‘보신과 패배의 씨앗’을 운운하며 “여러 부문의 사업을 신랄히 비판했다”고 보도한 것으로 보아 회의 분위기가 살벌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 회의에서 김정은은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고 당의 결정 지시 집행을 태공(태만)하는 단위 특수화와 본위주의 현상을 더 그대로 둘 수 없다”며 “당권, 법권, 군권을 발동해 단호히 처갈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의 결과 노동당 김두일 경제담당 비서가 해임됐음이 공식 발표됐다.

이어 지난달 24일에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선 80명의 군 간부가 참가해 군 내부 규율 강화와 군 간부의 통제 강화 대책이 논의됐다. 공개된 사진에서 상좌 계급(한국의 대령과 중령 사이 계급)을 단 군 간부가 대장과 상장들이 앉는 앞줄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던 것이 눈길을 끌었다. 그의 뒷줄에 상장, 중장들이 줄줄이 앉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번 회의는 계급 서열과 상관없이 진행됐다는 의미다. 실제 이날 회의 뒤 역대 대장 계급이 맡았던 해군사령관과 공군 및 반항공군 사령관에 한국의 준장 계급에 불과한 소장급 장성이 임명됐다.

노동당 전원회의가 당 최고위 간부들이 참가한 회의라면 중앙군사위원회는 군 최고위 지휘관들이 모인 자리라고 볼 수 있다. 이어 이달 8일부터 시·군당책임비서들이 참가한 강습회가 사흘 간 열렸다. 이들은 북한에서 각 지방을 책임진 간부들이다.

김정은이 이렇게 고위 간부들을 마구 다그치자 이들이 다시 아래 사람들을 모아놓고 다그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노동신문에 실린 반성문이 대표적이다. 이달 4일 당 외곽 근로단체들은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개최하고 일제히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다짐했다.

각 기관, 기업소, 농장 등에서 노동자들이 나와 당의 결심을 철저히 관철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결의대회를 연일 열고 있다.

최근 북한의 이러한 행태는 흡사 조폭 조직을 그대로 연상케 한다. 보스인 김정은이 최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에 화가 나 중간 보스들인 간부들을 모아놓고 연일 처벌과 협박을 하고, 중간 보스들이 다시 산하 조직원들을 다그치는 모양새다.

이는 과거 북한을 움직이던 시스템과 확연히 다르다. 물론 과거에도 북한은 공포의 독재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북한 미디어에 등장하는 보스는 항상 인자하고 너그러우며,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였다. 잘못된 일은 지시할 수도 없고, 따라서 반성도 없으며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심려하시였다”는 정도로 미디어에서 공개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 미디어에 등장하는 김정은은 과거와 전혀 달라졌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자신부터 반성을 한 뒤 중간 간부들을 모아놓고 처벌하고 다그치는 등 펄펄 날뛰는 모습이 그대로 여과없이 중계된다. 겁에 질린 간부들은 노동신문을 통해 자아비판을 하며 보스에게 충성맹세를 한다.

자아비판만 하면 오히려 다행이다.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3월 초부터 북한의 각 지역에선 대대적인 공개총살 바람이 불고 있다. 코로나 방역기간 밀수를 했거나, 한국 영상을 시청했거나, 뇌물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여러 명씩 공개재판에 끌려나와 시범으로 처형되고 있다. 중간 보스들이 명령을 어긴 부하들을 공개적으로 죽여 보스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는 중이다. 공포의 피바람은 지금 막 시작됐다.

결론적으로 볼 때 이제 북한의 통치방식은 노골적으로 조폭 조직의 운영방식으로 변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제주의 정권인 중국과 러시아도 이렇게 노골적인 조폭형 통치를 하지 않는다. 올해 북한의 보스 김정은도 과거의 인민의 ‘갓(God)’에서 ‘갓파더(Godfather)’로 변화하고 있다. 그 소름끼치는 변화는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이제 시작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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