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부패완판, 별의 순간…대선 D-1년, 다시 시작된 ‘말의 전쟁’[정치의 속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0일 12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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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으로서 헌법 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고,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책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3일 대구고검 방문에 앞서 최근 여권이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4일 페이스북에 “신조어까지 써 가며 국민을 겁박한다”고 비난했고, 윤 전 총장은 이날 사표를 던졌다.

● “별의 순간” 꺼내든 김종인
윤 전 총장의 사퇴는 정치권이 출렁였다. 5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의 의뢰를 받아 18세 이상 1023명을 대상으로 대선 후보 적합도를 물은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전 총장은 32.4%로 이재명 경기도지사(24.1%)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14.9%)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KSOI의 직전 조사(지난달 26, 27일) 당시 지지율(17.9%)보다 14.5%포인트 오른 것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8일 “(윤 전 총장이) 별의 순간을 잡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독일에서 유학한 김 위원장은 대선 도전의 기회를 ‘별의 순간(슈테른슈튼데¤Sternstunde)’에 비유해왔다. 독일어로 ‘운명적 시간, 결정적 순간’을 뜻한다.

윤 전 총장이 검찰을 떠나기 전 언급했던 ‘검수완박’은 정작 더불어민주당에서 검찰을 겨냥해 만든 말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이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까지 밀어붙여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겠다는 의미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여당에서 만든 말로 역공을 나선 걸 보며 정치적 감각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 말 한 마디로 전세 역전



가장 큰 정치 이벤트인 대선은 ‘말의 전쟁’이기도 하다. 각 후보와 정당은 단 한 문장, 한 번의 연설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고심을 한다.

16대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4월 6일 인천 경선에서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라는 한 마디로 자신을 향한 공격을 물리쳤다. 앞서 연설에 나선 이인제 후보는 “급진좌파가 우리 당을 점령하고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며 노 후보의 장인의 좌익 활동을 거론했다.

2017년 대선 당시 민주당 내에서는 ‘고구마’와 ‘사이다’가 자주 등장했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촛불정국에서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으로 상승세를 탔다. 자연히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고구마처럼 답답하다”는 평가가 따라 붙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사이다는 시원하지만 밥은 아니다.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 나는 든든한 사람”고 응수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단 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말을 남겼다. 박 전 대통령은 첫 대선 도전이던 2007년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했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짧지만 강력한 한 방이었다”며 “그 후 두고두고 회자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대선 무대의 패자들도 인상적인 발언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18대 대선 때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우리 모두 저녁이 있는 삶에 목말라 있었다”며 ‘저녁이 있는 삶’을 선거 구호로 택했다. 당시 당내 후보 경선의 경쟁자였던 문 대통령 캠프에서조차 “뺏어오고 싶을 정도로 잘 만든 구호”라는 평가를 내놓았었다.

박민우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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