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는 수사-기소 융합, 檢은 분리…여권의 자가당착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3일 11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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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직접 수사권 보유가 세계적 추세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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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최근 출범시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융합해 놓고 검찰에 대해서만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여권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는 전제로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닌데도 마치 수사·기소 분리가 시대적 흐름이자 우리 형사사법이 지향해야 할 대명제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여권의 주장이 최소한 일관성을 가지려면 공수처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했어야 하지만 공수처 출범 전 여권은 ‘수사·기소 분리’를 공론화하지 않았다. 그 결과 1월 출범한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보유했다. 이 뿐 아니라 공수처는 영장 청구권에다 검찰과 경찰에 대한 사건 이첩 강제권까지 가짐으로써 사실상 검찰과 경찰을 지휘하는 최상위 슈퍼 수사기관으로 군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이런 점들 때문에 여권이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을 통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려면 수사권과 기소권이 융합된 공수처도 검찰과 함께 권한을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더 나아가 영장 청구권과 사건 이첩 강제권 등 공수처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지적을 받는 수사 관련 권한도 ‘권력 분산’의 취지에 따라 분리하는 것이 여권의 논리에 부합한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2일 “대형 사건의 경우 수사 검사가 기소를 담당하지 않으면 공소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을 거들고 나선 것은 표면적으로 검찰의 입장을 옹호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권의 수사·기소 분리 추진이 자칫 공수처의 수사 권한 분산으로 불똥이 옮겨 붙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이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기 위한 주요 근거로 삼고 있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 논란에 공수처까지 휘말릴 경우 문재인 정부가 검찰 견제를 위해 공을 들여 출범시킨 공수처가 수사도 해보기 전에 권한 축소라는 유탄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권은 현재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전제로 한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을 추진하면서 핵심 근거로 ‘수사의 기소의 분리가 세계적 추세’라는 점을 들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수사와 기소는 전 세계적 추세를 보더라도 분리돼야 하는 것이 맞다”고 했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어느 나라에서도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가지고, 심지어 영장청구권까지 독점하고 있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문명국가 어디에서도 검찰이 직접 수사권을 전면적으로 행사하는 나라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계와 법조계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수사와 기소의 분리, 또 검찰의 수사권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는 여권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사법선진국은 모두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검사에게 직접 수사권이 부여돼 있고, 영국은 부패범죄에 대한 국가적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검사가 공소유지만 하던 기존 제도를 바꿔 수사와 기소가 융합된 특별수사검찰청(SFO)을 신설했다.

일본은 형사소송법에 검사의 직접 수사권이 명문화돼 있다. ‘검찰관(검사)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스스로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개 주요 검찰청에서는 특별수사부가 중대범죄 수사를 맡고, 나머지 지방검찰청에서는 특별형사부가 한다. 추 전 장관이 “자체 수사 인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한 독일 검찰도 수사관은 없지만 검사가 경찰을 지휘하는 식으로 수사권을 행사한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독일 헤센주 검찰이 최순실 씨(개명 후 최서원)의 돈세탁 혐의를 수사한 것이 비근한 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선진국들이 중대범죄 수사에서 검사의 직접 수사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은 부패·금융범죄가 갈수록 전문화, 대형화하는 추세 속에서 법률전문가인 검사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고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세계적 흐름에 역행해가면서까지 근 70년간 유지돼 온 검찰 수사권을 하루아침에 없애겠다는 것이야말로 졸속 행정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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