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지시 받은뒤 처형하듯 총살… 수십L 기름붓고 40분 불태워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입력 2020-09-25 03:00수정 2020-09-2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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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우리 국민 사살]
北, 실종 다음날 NLL 인근서 발견… 탈진한 표류자 바다에 방치
방독면 쓴채 신문… 6시간뒤 총쏴, 훼손한 시신 수습도 않고 현장 떠나
평양 지시 기다리느라 지체 가능성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이모 씨가 북한군에 의해 총살된 뒤 시신까지 불태워져 바다에 버려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북한 정권의 잔학성에 대한 공분이 거세지고 있다. 북한 지도부의 승인이나 묵인 아래 우리 국민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대남 불만을 표출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 ‘상부 지시’로 처형 후 시신에 기름 붓고 불태워

군에 따르면 이 씨는 21일 오전 11시 30분경 소연평도 해상의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된 뒤 다음 날(22일) 오후 3시 반경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에 발견됐다. 군 관계자는 “당시 이 씨는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1명이 탈 수 있는 규모의 부유물을 붙잡고 있었다”고 전했다. 최초 실종 직후 28시간 동안 수온이 낮아진 바다를 표류하면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북측 인원들은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한 채로 바다에 떠 있는 이 씨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면서 표류 경위와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군은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이 씨를 건져 올리지 않은 채 신문을 한 것이다.

이후로도 북측은 이 씨를 바다에 방치하면서 구조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 오후 9시 40분경 ‘타타탕’ 하는 총성이 칠흑 같은 밤바다의 정적을 갈랐다. 현장 인근에 도착한 북한 단속정에서 갑자기 이 씨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한 것. 장시간 표류로 기력이 다한 그는 아무런 저항도 못 한 채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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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관계자는 “오후 9시경 상부에서 (사격) 지시가 내려진 뒤 북측은 이 씨를 향해 총격을 가한 걸로 파악됐다”면서 “총격에 사용한 총기 종류와 사격 발수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 단속정에는 개인화기로 무장한 10여 명의 북한군이 탑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은 2000년대 초반부터 AK―74 소총을 개인 기본 화기로 운용하고 있다. 기존의 소련제 AK―47 소총보다 관통력과 사거리가 개량된 기종이다. 군 소식통은 “북한군이 이 씨를 해상에서 ‘즉결 처형’하는 데도 같은 소총을 사용했을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반인륜적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북측 인원들은 오후 10시경 총격으로 사망한 이 씨의 시신에 접근한 뒤 기름을 붓고 불태우기까지 했다. 오후 10시 11분경 북측 현장에서 20km 이상 떨어진 연평도의 우리 군 감시장비에도 시신을 불태우는 불빛이 포착됐다고 한다. 군 소식통은 “아군 관측 장비에 시신을 훼손하는 불빛이 40분간 잡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불빛이 지속된 시간과 우리 군에 관측된 거리 등을 고려해 볼 때 최소 수십 L의 기름을 이 씨의 몸에 붓고 불을 질러 시신을 훼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북측은 이 씨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은 채 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 김여정 등 북 수뇌부 지시했나

이번 만행을 저지른 북한군은 해군 소속이라고 군은 설명했다. 남포에 있는 서해함대사령부 예하의 말단 부대라는 얘기다. 서해함대사는 6개 전대에 420여 척의 함정을 운용하고 있고, 그중 60%가량을 NLL 인근에 전진 배치하고 있다.

북한군이 ‘상부 지시’에 따라 이 씨를 총살하고 시신을 훼손했다는 군의 발표로 미뤄 볼 때 최소한 서해함대사 이상의 지휘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이 씨를 최초 발견하고 처형하기까지 6시간이나 걸렸다는 점에서 평양의 총참모부나 최고수뇌부의 지시를 기다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선 대남 총책으로 올라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까지 보고를 받았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북―중 접경뿐만 아니라 NLL 등 남북 접경도 무단 월경 발견 시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도 북한이 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해 중국과의 국경에 특수부대를 배치해 무단으로 넘어올 경우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군은 이런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코로나19가 북한군 경계작전에 미칠 파장을 우리 군이 간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북 정보 판단에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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