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부질문은 사라지고 ‘추미애 청문회’만 남았다

  • 뉴스1
  • 입력 2020년 9월 17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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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2020.9.16/뉴스1 © News1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2020.9.16/뉴스1 © News1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 한복판에서 열린 21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에도 민생은 없었다. 코로나19 극복에 여야가 따로 없다는 정치권의 구호는 역시나 허언에 불과했다.

지난 14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국회 대정부질문은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의 군 특혜 휴가 의혹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잠식했다. 청문회급 난타전으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야당은 추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십자포화를 퍼부었고, 여당은 추 장관을 엄호하는 각종 논리들을 발굴, 방어에 여념이 없었다. 당 최고위원인 김종민 의원은 대정부질문 질의에서 ‘질의’는 하지 않고 추 장관 변호에만 13분의 시간을 모두 쓴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87년생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86그룹 기득권’을 겨냥한 일침은 더욱 울림을 남겼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7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 질의에 “추미애 장관 문제에 대해서 벌써 며칠 째냐”라며 “국민이 절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좀 벗어나서 국정을 논의하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정 총리는 “누구든지 과오가 있거나 불법행위를 하면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법무부 장관도,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렇다”며 “검찰이 수사하고 있으니까, 국민의힘은 시민단체가 아니고 제1야당 아니냐. 국정을 논의하자”고 말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대정부질문은 국정 전반 또는 국정의 특정 분야를 대상으로 정부에 대해 질문하는 자리다. 각 부처 장관 등 국무위원에 국회의원이 질의한다. 일문일답의 방식으로 하되, 의원의 질문시간은 20분을 초과할 수 없다. 의장은 의원의 질문과 정부의 답변이 교대로 균형 있게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대정부질문은 ‘추미애 청문회’와 다름 없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추 장관 아들 군 휴가 특혜 의혹에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다. 추 장관 본인 뿐 아니라 정세균 국무총리, 정경두 국방부장관, 강경화 외교부장관 등에 질문이 집중됐다. 첫날 정치분야 대정부질문 뿐 아니라 다음날 외교·국방·안보 분야 질문에도 추 장관 자녀 관련 공방에 매몰됐다. 남북관계가 엄중하고 일본의 총리가 교체되는 주요 안보 외교 현안 등은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대정부질문 본래 취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야당 의원들은 ‘탈영’ ‘황제’ ‘엄마 찬스’ 등의 표현으로 추 장관을 거칠게 몰아세웠다. 여당 의원들은 야당의 공세를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규정하며 야당의 의혹제기를 일축했다.

당사자인 추 장관은 이날 대정부질문에서도 “억지와 궤변이 엄청나다”, “저도 많이 인내하고 있다”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추 장관은 지난 4일 대정부질문 첫날부터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울컥하거나 야당 의원을 노려보며 “너무 야비하지 않느냐”고 했다. 또한 자신의 보좌관이 아들 군부대에 전화했는지 여부를 확인했는지에 대해선 “확인하고 싶지 않다, 수사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검찰이 수사를 안해 의혹이 커지면 아들과 제가 가장 큰 피해자”라고 언성을 높였다. 추 장관은 자신의 자진사퇴를 거론하는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 “검찰개혁이 내게 부여된 과제고 운명처럼 수용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일축했다.

이날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국방부 면담일지에서 추 장관 부부 중 한 명이 국방부에 민원 전화를 한 것으로 적힌 것에 대해 “저는 민원을 넣은 바 없다”며 “제 남편에게도 ‘민원 넣은 적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장녀가 과거 운영했던 서울 이태원 소재 양식당에서 기자간담회 등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사용, 정치자금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딸 가게라고 공짜로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또 “아픈 기억을 소환해준 의원님 질의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비꼬는 여유도 보였다.

대정부질문 기간 민주당은 장외 지원을 한다며 볼썽사나운 추 장관 방어 논리를 펴 빈축을 샀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전날(16일) 추 장관 아들 서모씨를 독립투사인 안중근 의사에 빗대 공분을 샀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당 회의에서 “(휴가 연장은) 전화, 메일, 카카오톡 등으로도 신청이 가능하다고 한다”고 발언한 것도 논란에 휩싸였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대목은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 초선들의 날카로운 소신 발언이다.

87년생 장혜영 의원은 전날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정부·여당의 주류인 ‘86그룹’ 등 민주화운동 세력을 겨냥해 “어느새 시대의 도전자가 아닌 기득권자로 변했다”며 직격했다. 그는 “(민주화 주인공들은) 기득권자로 변해 말로만 변화를 기대할 뿐, 사실은 변화를 가로막는 존재가 됐다”며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한 세상을 위해 사랑도 이름도 남김없이 싸우겠다는 그 뜨거운 심장이 모두 어째서 이렇게 차갑게 식어버린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초선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이날 대정부질문에 질의자로 나서 “나흘간 대정부질문을 보며 참 답답했다”며 “전례없는 위기에 대책을 찾기도 바쁜 시간에 추 장관 아들 문제에만 집착하는 제1야당을 보면서 송구스러웠다”고 비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대정부질문의 변질을 꼬집었다. 류 의원은 “국정을 설명해야 할 국무위원 대부분은 관객이었고, 주연은 ‘법무부장관’, 조연은 ‘국방부장관’이었다”며 국가와 국민은 어디로 갔느냐고 쓴소리를 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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